야동 쉽게 보기 : Blue Blue Friday 0. 윤이원

한국미녀
Blue Blue Friday 0. 윤이원
밍키넷 0 3,933 2023.08.21 13:50
Blue Blue Friday  0. 윤이원

 “맘대로 해. 그 새끼는 나도 이제 슬슬 질려가던 참이었거든. 그딴 새끼는 
길가에도 널렸으니까 마음대로 하시지.“
핸드폰을 통해 흘러나온 그 말은 듣던 우리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 핸드폰 옆에 있던 그 녀석은 오히려 담담했지만.




 
 “대담한 거야? 바보인 거야?“
 “체념한 거겠지.“

킬킬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가해지는 폭력에도 그는 가만히 있었다. 어쩌면 
체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축 늘어진 팔과 다리, 가해지는 압
력에 흔들리는 몸뚱이는 힘없는 인형 같았다. 비록 묶여 있다고는 해도 저
렇게 저항이 없을 수가 있을까.

세 명에게 둘러싸여서 연신 강간당하는 사람답지 않은 태도에 나는 조금 
호기심이 생겨버렸다. 한참 싸대던 주환이가 고개를 들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정말 안 오네, 이 새끼.“
 “방금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던가봐.“
 “독종, 독종이라도 말이야, 사내새끼치고는 정말 더러운 자식 아냐?“
 “그건 독종이 아니라 치사한 새끼야.“

말들도 많다. 심명환이를 불러내겠다고 그 깔을 납치해 온 놈들이 뭐가 그
렇게 말이 많은 지. 주환이가 바지춤을 걷어올리면서 물었다.
 “한 번 더 전화해 볼까?“
 “관둬, 올 새끼였다면 벌써 왔지, 지 깔이 어떻게 될지 뻔한데 아직까지 
안 왔겠어?“

그 말에 녀석들은 일제히 한 숨을 내쉬었다. 뭐랄까 하고 나니 더 허탈한 
것같은 얼굴들.
서너명에게 시달려서 온통 피투성이가 된 녀석은 손목을 쇠파이프에 묶인 
채로 추욱 늘어져 있었다. 다리는 아무렇게나 벌려져 피가 나오고, 정액으
로 범벅이 된 하얀 다리는 멍투성이에 생채기투성이. 이렇게 앉아 있는 내 
쪽에서는 녀석의 벌어진 애널이 그대로 보였다. 벌어진 것은 둘째치고 피
가 줄줄 흐르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혹시 내장파열같은 거 된 게 아
닐까 싶었지만 굳이 나서서 손을 더럽히기는 싫었다. 


 “기분 더럽네.“
 “뭐, 새로운 걸 맛봐서 썩 나쁜 건 아닌데 뒤가 찝찝하잖아? 마치 뭐하고 
손 안닦은 거처럼 말이야.“

새로 담배를 피워물면서 중건이가 중얼거렸다. 녀석은 나를 향해서 티껍다
는 듯이 물었다.

 “넌 왜 안해?“
 “강간은 내 취미가 아니라고 했잖아?“
 “이거야 뭐 취미로 하냐? 어디까지나 본보기지.“
녀석은 마땅치 않다는 듯이 날 보더니 연기를 내뿜었다.
 “별 시답지 않은 소리 지껄이고 자빠졌네. 씨발, 너 이 새끼, 심명환이 그 
새끼를 가장 갈구고 싶어한 게 너 아냐?“
 “별로, 그 새끼야 어차피 서울 이 바닥에 있을 거 아닌가? 그럼 그 새끼 
족칠 날도 머지 않은 거지. 굳이 그 깔을 치댈 정도로 욕구불만도 아냐.“


 “잘난 체 하지 마, 짜샤!“
바닥에 널려있던 심명환의 깔 옷가지를 내게 집어 던진 중건이는 기분 더
럽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문득 밖에서 오줌발을 세우고 있던 주섭이의 뒤
통수를 향해 외쳤다.
 “야! 가자!“
 “한발 더 싸고.“
주섭이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투덜거렸다. 주섭이는 중건이쪽을 보다말고 
내 쪽을 흘긋 보았다. 내가 담배꽁초를 내버리자 한숨을 내쉬면서 다가섰
다.

 “너 고자지?“
 “그 고자랑 어제 박아댄 년은 뭐냐?“
 “지랄 마. 근데 왜 안 끼어? 네 놈새끼는 의리라는 게 없냐?“
 “의리같은 소리 하고 있네, 구멍동서가 되면 의리가 넘쳐 흐르는 거냐?“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침을 뱉어내고 있던 주환이가 크게 소리질렀다.
 “야, 더 볼일 없으면 가자.“
 “이 새낀?“
축 늘어진 하얀 몸뚱이를 발끝으로 툭툭 치면서 중건이가 물었다. 
 “손이나 풀러. 그럼 알아서 기어가든 죽어가든 하겠지.“
주섭이가 중얼거리자 중건이는 칼을 꺼내들어 녀석의 묶인 손목을 풀어 주
었다. 덕분에 녀석이 의식을 차린 것인지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불투명한 
눈동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맑아보이는 그 눈에 나는 조금 의아해
졌다. 체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야, 심명환이가 널 배신 때린 거 기분 어떠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든 건지 주섭이가 툭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 말에 여지껏 비명이외엔 지른 게 없었던 녀석이 처음으로 주섭을 정면
으로 보았다. 멍이 잔뜩 든 그 얼굴과 터진 입가. 눈물자국으로 엉망이 된 
녀석은 갑자기 피식 웃었다.

 “배신?“
 “어라라? 이 새끼 웃어?“

그 말에 중건이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갑자기 녀석은 축 늘어
진 채로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김정인, 심명환이 깔이 아니야.“



그 웃음에 우리들은 잠시 침묵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녀
석의 말투가 지나치게도 시니컬해서, 여지껏 우리가 박아댔던 녀석답지 않
았기 때문이다.
 “뭘 믿어야 배신이지? 깔? 웃기지 마. 녀석도 니들이랑 똑같았어. 제멋대
로 끌어다가 후려치고 박아대더니 그 다음에는 깔이라더군. 그리곤 신입생
이 들어오자 그 새끼에게 푹 빠졌지.“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나 깨끗해서 잠시 나는 숨을 삼켰
다.

 “하하하하하......이제, 싫증이 났다? 이제 그럼 난 자유야.“
녀석은 늘어진 채로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에 우리들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개운한 
그 웃음소리에 나도 피식 웃어버렸다. 엉망진창으로 윤간당한 녀석이 이런 
소리로 웃다니. 
문득 킬킬거리던 녀석을 보고만 있던 주섭이가 피식 웃었다.
 “그럼 우리가 저 새끼 은인인 셈이군?“
 “그런 가봐.“
중건이도 피식 웃었다. 아까의 더러운 기분이 좀 가신 것인지 우리들은 이 
놈의 웃음소리에 소름이 끼치다 말고 상쾌해졌다.
 “이 새끼, 병원으로 옮겨.“
아까의 버리고 가자는 말이 무색하게 주섭이가 말했다. 그 말에 놀란 중건
이 그를 돌아보자, 주섭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근성 있는 새끼잖아? 대접 해줘.“



1. 윤이원

심명환은 정일고의 짱이었다. 우리 학교와는 항상 사이가 좋지 못했기 때
문에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 놈은 정말로 더티할 정
도로 비겁한 수도 아낌없이 쓰는 놈이라 우리들은 이 놈을 증오했다. 그저 
싸우는 게 아니라 반쯤 죽여놓고 싶을 정도로 이 놈이 싫었다. 이 새끼가 
남자놈들을 박아댄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전혀 가책감
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 심명환의 깔이라는 녀석을 끌고 왔었지만 심명환이
란 놈은 깔이라는 놈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내버려두었다. 


 이 정도 되면 나는, 이 녀석을 죽이든 갈아버리지 않으면 틀림없이 우환
이 될 거라 생각했다. 
 고교시절의 낭만을 즐기는, 그냥 좌충우돌하는 패거리가 아니라 이 심명
환이란 놈은 깡패가 될 놈이었다.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부딪치는 그런 놈
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죽일 그런 놈. 그런 냄새가 다분했다.


 우리 그룹의 짱인 주섭이는 심명환과는 조금 달랐다. 이 놈은 낭만파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이 안 가는 놈은 아니었다. 절대로 지나친 짓
은 하지 않는, 묘한 균형감각이 있는 놈이었다. 나와 그 놈은 초등학교 때
부터 같이 붙어 다니던 사이었다.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주섭이의 아버
지가 돌아가신 이래로 우리들은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지만 절대로 서로에
게 터치하지는 않았다. 주섭이의 맹렬한 추종자 중건이가 우리들 사이에 
끼어 들고, 중건이의 친구라는 주환이가 또 끼어 들어 네 명이 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우리들 사이는 그럭저럭 
잘 굴러갔다. 매사 무관심한 나에게 중건이는 조금 불만이 있는 것 같았지
만 그건 그거고 어쨌거나 우리들은 잘 지냈다.


 병원에 스스로를 김정인이라고 말한 녀석을 입원시키고 나서 우리들은 해
장국을 먹었다. 해장술을 조금 하고 싶었지만 단골집 할머니가 구속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저 소주나 몇 병 얻어들고 나왔다. 문득 
주섭이가 나에게 물었다.


 “너, 저 자식에게 관심있지?“
 “뭐?“


아지트가 된 주섭이의 아파트에서 소주병을 따자마자 물은 소리가 그거라 
나는 조금 시큰둥해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일제히 다른 놈들도 날 
바라본다.


 “그 놈에게 관심 있는 거 아냐? 내 말 틀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가? 그런 건가?


 “내 눈은 못 속인다. 씨발 새끼. 그래서 그런 거 아냐?“


주섭이가 술을 털어 넣으면서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그것보단 꼴리지 않아서 안 한 것 뿐이야.“
 “그럼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어떤 눈?“
 “매사 흐리멍텅 썩은 동태알 같은 네 놈이 그 놈을 볼 때는 번쩍번쩍 하
더라. 새꺄.“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정말인가?


 “그 새끼, 이뻤지?“


갑자기 재미있다는 듯 중건이가 슬쩍 끼어들었다.


 “이뻤지, 하얀 피부에 야들야들한 엉덩이에.“
 “심명환이 새끼, 당연히 꼴렸겠지.“


둘이서 키득거리는 소리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가?“


 나는 그 놈의 눈 밖에는 기억나지 않았다. 웃던 그 얼굴은 꽤나 선명해서 
흰 목과 더불어서 기억에 남았다.


 “그 새끼, 이제 자유라고 지껄였으니까 네가 가져.“


중건이가 내 허리춤을 찌르면서 키득거렸다. 나는 소주잔을 들이키면서 고
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고. 하지만, 별로 꼴리진 않아. 사내새끼를 보고 꼴린 적이 별
로 없었거든.“
 “사내새끼도 나름이지. 난 그 새끼, 야들거리는 주제에 근성이 있어서 제
법 마음에 들었어.“


웬일인지 주섭이가 칭찬해서 우리들은 일제히 놀라는 얼굴로 주섭을 보았
다. 주섭이는 옆에 앉은 중건이를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그 새끼 범생이지? 공부도 제법 한다고 했던거 같은데?“
 “심명환이가 사람 하나 버렸지.“


갑자기 키들거리면서 중건이와 주환이가 웃기 시작했다. 둘이서 하도 웃는 
터라 나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주섭이는 웃지도 않더니 진지
하게 말했다.


 “나는 그 새끼가 마음에 들었어.“
 “그럼 너나 가지던가.“


내가 중얼거리자 주섭이는 고개를 흔들더니 옆에서 고추장에 오징어를 찍
고 있던 중건이의 목을 끌어 당겼다.


 “난 이 새끼로 충분해.“


그 말에 중건이의 얼굴을 새빨갛게 달아 올랐다. 녀석은 한 참동안 컥컥거
리더니 주섭이를 뚫어지도록 야렸다.


 “왜? 감격했냐?“


중건이가 부들부들 떨자 주섭이는 히죽 웃어보였다. 


 “이 새끼! 죽어!“


발로 걷어차고 발광을 하는 중건이의 발목을 잡아 챈 주섭이는 중건이가 
발라당 넘어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그 발목을 질질 끌고 방안으로 들어
갔다.


 “어디가?“


주환이가 눈치도 없이 물었다.
그러자 주섭이가 씨익 쪼개며 말했다.


 “이 새끼가 발광하니까 꼴려서.“
 “안 놔! 이 새꺄! 아까 잔뜩 하고 왜 지랄이야!“


주섭이가 중건이가 발광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녀석의 발목을 잡아끌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은 주환이가 중얼거렸다.


 “저 덩치를 끌어안고 그 짓이 그렇게 하고 싶을까?“
 “취향인가 부지.“


내가 중얼거리자 주환이는 혀를 찼다.


 “키 180에 몸무게가 80킬로를 오가는 놈을 끌어 안고 싶다니, 나는 할 말
이 없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놈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Blue Blue Friday  2. 김정인

 “정말로 괜찮겠어?“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반듯하게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천장. 청회색의 벽. 너무나 깨끗하고 차가워보이는 그 벽을 바라보면
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내 얼굴에 수건을 대며 울
었다.
 “사람 몰골이 아니야. 기분은 어떠니?“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요.“
허탈한 웃음으로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글썽해진 어머니는 다시 고개를 숙
이고 울기 시작했다. 창피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사내자식이 남자들에게 
윤간당해 입원을 했다는 게 도무지 기가 막혀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어
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아버지는 내가 입원을 한 직후 다시는 내 병
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틀림없이 내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의외인 것은, 내가 아주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심명환에게 처음 강간당했을 때는 죽고 싶었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 
녀석에게 찍혀서 강제로 끌려나가 화장실에서 강간당했다. 다리가 부러지
고 팔에 금이 가고, 갈비뼈가 두 대나 나갔을 정도의 중상으로 내버려졌을 
때 나는 죽고만 싶었다. 병원에서의 치욕적인 수군거림도, 부모님의 경악도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퇴원해서 거의 1년간 심명환의 화장실 
노릇을 하는 동안에는 이 치욕도 아픔도 수그러들어 마비되기 시작했다.
 가끔은 심명환이 나에게 귀엽다느니 이쁘다느니 하는 소리가 진심으로 들
리기도 했다. 뭐 좋으니까 깔았겠지 하는 기묘한 자조감도 있었다. 하지만 
새 학년이 시작되어 신입생 중에 귀엽고 이쁜 애를 하나 찍은 뒤로 심명환
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게 불안하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해서 나는 언제
나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이제는 자유야.“
그 말은 허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심명환이 이렇게 최악의 상태로 날 버린 것이 우스웠다. 화가 난다기 보다
는 우스워서 그저 웃음만 나왔다. 오히려 날 윤간한 녀석들이 근성있다고 
칭찬하며 날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때가 나에겐 더 놀라웠다. 녀석들은 묘
하게 친절한 눈으로 나를 병원에 입원시키더니 몸 조심하라는 소리까지 덧
붙이며 사라졌다. 
 그 말이, 묘하게 나에게 구원이 되었다.
 나는 남자야. 나는 심명환이 깔이 아니라 김 정인이야. 나는 남자야. 나는 
깔이 아니야.
그 말을 되뇌던 순간 그렇게도 폭력적으로 날 상처입히던 녀석 중 한 명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웃어 주었다.

 “정인아?“
어머니가 사과를 깎다말고 불안한 듯 나를 불렀다.
 “아아. 괜찮아요.“
 “정인아, 전학하자.“
 “전학이요?“
 “그래, 전학해. 우리 이사도 가자.“
 “그래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 가요. 엄마.“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어머니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사과 깎던 칼이 바
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흐느끼면서 어머니는 중얼거렸다.
 “네, 네 잘못이 아냐. 아니라구.“
 “아니에요. 약한 내가 잘못이죠.“
이렇게 생겨 먹은 내가 잘못이죠. 나는 그렇게 되뇌면서 1년 동안이나 살
을 섞어 오던 심명환보다 그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그의 얼굴이 
더 선명한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경멸과 조롱기만 가득하던 학교 녀석들과는 다른 시선.
 이제, 전학을 가고 이사를 가고 나면 자유다. 심명환따위와 다시는 볼 날
이 없을 것이다. 보통의 학생으로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평범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이제, 나는 자유야.
나는 웃었다. 계속해서 웃었다. 





 “김 정인. 괜찮니?“
담임이었던 선생은 나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로서도 입학하
자마자 강간폭력으로 입원했다가 이번에는 집단 윤간으로 입원한 내가 어
처구니 없는 짐이었을 것이다. 그 눈동자에 담긴 묘한 호기심과 동정, 그리
고 바닥에 깔린 환멸감에 나는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네.“
 “다행이다. 전학간다고?“
 “네.“
내가 대답하자 담임은 잠시 동안 말을 고르는 듯 침묵하더니 갑자기 말했
다.
 “고소.....할 꺼냐?“
 “아뇨.“
 “알았다.“
약간은 안도한 듯한 그 얼굴에서 나는 그가 그 말을 물어보려 온 것임을 
알았다. 그렇겠지, 자신이 담당한 학생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매스컴에서라
도 한 번 떠들면 아주 시끄러워지고 말겠지. 나는 환멸감을 감추지 않으면
서 담임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교사가 되셨죠?“
 “뭐?“
 “월급 받고 밥 먹기 위해서인가보죠?“
나는 조용히 담임에게 물었다. 그의 얼굴이 처음에는 파랗게 되더니 그 다
음에는 빨갛게 되는 것을 보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똑같은 꼴이다. 
그가 심명환의 보복이 두려워 침묵한 것처럼 결국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 
아닌가.
 “너, 그게 지금 무슨 말투냐? 선생님에게 할 말이.....!“
 “관두지요.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을테니까요.“
내가 조용히 말하자 그는 내 어깨를 움켜쥐며 고함을 질렀다.
 “이 건방진 자식! 네가 그러고도.......!“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되도록 왜 내버려두셨지요?“
내가 그렇게 묻자 그의 동작이 굳었다. 나는 지쳤다. 이 사람과 떠들어 봐
야 이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 담임선생님이면서, 내가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셨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얼굴이 다시 파래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 얼굴
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두지요. 이미 쓸데 없는 이야깁니다. 선생님.“
 “기, 김정인! 너 그런 말투로............“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는 돌아누웠다. 
담임은 부들부들 떨다가 밖으로 나갔다. 어차피 다시 볼 것도 아니다. 아무
리 담임이라고 해도 그가 날 도와주지 않았던 것처럼 결국 날 도와줄 사람
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폭력 속에서 구해줄 사람이란, 결국은 아무도 없
는 게 아닐까.

이사하던 날도, 전학 가던 날도 아무도 나에게 연락해 오지 않았다. 친구란 
원래 없었고 심명환이 패거리들 이외엔 별로 아는 자들도 없었다. 그들도 
나에게 모두 신경을 끊었다. 이게 고교생활의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자 묘
하게도 기뻐졌다. 이젠 이런 일따위 다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전학
이 아니라 아예 학교를 관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란, 그저 지옥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그 이야길 하자, 어머니는 새로운 학교에서 일단 적응하고 결
정하자고 했다. 나는 두 달만 다녀보고 그래도 아니면 그만두겠다고 말했
다. 어머니는 좋도록 하라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버지와는, 벌써 한 달째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나를 피하듯이 밤늦게 들어오는 아버지가 오히려 안쓰러웠다. 차라리 집을 
나가 따로 살면 어떨까까지 생각해보았지만 어머니에게도 그건 상처가 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어머니는 날 향해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억지로 웃지 말아줘. 차라리 울어라.“
나는 억지로 웃는 게 아닌데. 정말로 너무나 개운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웃는 것뿐인데.
전학간 학교로 처음으로 등교하던 날, 나는 집을 나서면서 불안해졌다. 전
처럼 그런 일이 또 있으면 어떻게 하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로 
형편없는 녀석으로 나뒹구는 것은 아닐까?
 학교는 지하철로 세 정거장 정도 가면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로 가는 게 
너무 답답해서 버스를 탔다. 버스로는 다섯 정거장 정도 된다. 가방을 메
고, 어색한 기분으로 창밖을 보니 나처럼 학교로 가는 녀석들이 가득했다. 
학교를 쉰 지 그럭저럭 두 달. 몸은 회복되었지만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어떤 학교든 그런 놈들은 항상 있기마련 일 터인데, 어차피 뻔한 생활인데 
굳이 도망칠 필요도 없는 지 몰라. 허탈해서 또 웃음이 나왔다.
 “전학 온 김정인입니다.“
2학년 교실은 전에 다니던 곳 보다 약간 작았다. 남녀공학인지라 조금은 
분위기가 부드러웠다. 내가 인사를 꾸벅하자 몇몇 애들이 깔깔거리며 내게 
질문을 던져댔다. 
 “여자친구는?“
 “이사온 거냐?“
 “전의 학교는 어땠냐?“
무수한 질문들 사이로 나는 피식 피식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그들의 질
문에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 내 자신이 조금 놀라웠지만 그럭저럭 이 학
교가 마음에 들었다.
 “김정인, 너 전의 학교에서 인기 있었을 거 같은데?“
 “남학교인데 뭔 인기?“
 “예쁘장하니까 틀림없이 왕 따가 아니었을까?“
깔깔거리는 애들 옆에서 의외로 담담한 나는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이상도 하지, 왜 이렇게나 담담한 것일까?
무난히 수업을 마치긴 했지만 진도가 달라서 역시 어려웠다. 공부를 도와
주겠다고 반장이 나에게 노트를 빌려주었다. 고마운 생각에 녀석에게 음료
수를 하나 뽑아주자 녀석도 약간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뭘, 당연한 건데. 이래뵈도 반장 아니냐.“
 “아니, 고맙다.“
반장은 유상철이라고 했다. 부반장은 김나미라고 하는 여자애로, 깔끔떨게 
생기긴 했지만 제법 귀여웠다. 둘은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면서 프린트물
을 내라, 숙제를 내라 말아라 소리를 질러댔는데 전의 학교와 달리 부드러
운 분위기가 좋았다. 여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부드럽다는 게 의
외였다.
 전에 다니던 학교와는 꽤 떨어진 거리였기 때문인지 전의 학교 일을 물어
보는 애들은 별로 없었다. 멀어서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것에 
안도하면서도 나는 한 편으로는 불안해졌다. 이 애들이, 나중에 내가 그 학
교에서 어떤 일을 당하고 이곳으로 전학을 왔는지 알게 되면 정말로 가만
히 있을까. 지금처럼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봐.“
새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일 주일 후, 나는 또다시 전의 심명환과 비슷
한 녀석의 지목을 받았다.
 “너, 야릿하게 생겼는데.“
무표정하게 얼굴을 굳히자 녀석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 추근거렸다.
쓰레기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두 놈은 덩치가 나보다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비록 내가 작은 편이긴 했어도 이 놈들이 거구라는 것은 확실했다. 
청소도구함을 쥐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일이 결국은 또 생기는 구나. 
혹시, 나는 남자새끼들을 꼬시는 냄새라도 풍기고 다니는 것일까?
 “계집애처럼 생긴 주제에 개기는 거냐?“
턱을 만지고 엉덩이를 주무른다. 소름이 끼쳤지만 입을 다물고 참았다. 여
기서 반응을 보이면 이 놈은 틀림없이 나를 덮칠 것이다. 지난 1년간의 경
험으로 나는 그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모른 척하자 녀석
은 조금 열이 받았는지 나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파서 비명도 지르지 못
하고 헐떡이자 녀석은 잔뜩 두들기고는 가버렸다.
 “괜찮아?“
멀리서 보았는지 반장과 주번이 황급히 다가왔다. 내가 피를 흘리자 양호
실로 가자고 주번이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고개를 젓고 일어서자 배가 너
무 아파서 괴로웠다.
 “괜찮아. 집이나 갈래.“
 “그래, 청소고 뭐고.....일단! 집에 가! 내가 데려다 줄게!“
 “아냐, 그냥 혼자 갈래.“
 “이 몸으로?“
반장과 주번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녀석들 손을 뿌리쳤다. 이런 식으로 
맞아본 게 처음도 아니고 두려울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교
실로 돌아가 가방을 챙겼다. 멍이 조금 들고 입가가 조금 찢어진 정도인데 
뭐가 대단하랴.
 하지만 내 생각과 몸은 별도인가 보다. 부들부들 손가락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점점 뜨거워지는 몸. 혐오감으로 구토감이 일
어났다. 내가 화장실에서 토하는 것을 보고 놀란 반장이 쫓아 들어 왔다.
 “괜찮아?“
 “아, 음, 속이 메슥거려.“
 “배를 맞아서 그런 가봐.“
손수건을 건네주는 녀석에게 고맙다고 한 마디 하면서 받아들자 문득 반장
이 묘한 얼굴로 말했다.
 “너, 굉장히 어른스럽다.“
 “뭐?“
놀란 얼굴로 녀석을 보자, 반장은 조금 얼굴을 붉혔다.
 “묘한 분위기가 있어. 처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무지 눈에 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멍하니 들었다. 역시 그런 경험을 하고나니 냄새라도 나
는 것일까?
흰 얼굴에 붉은 눈가. 입술은 찢어져 약간 부풀었다. 멍든 얼굴이지만 어딘
가 어설픈 냄새가 난다. 발정난 개 같은 냄새. 끔찍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 
토했다. 점심 먹은 것을 완전히 게워내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괜찮겠어?“
반장은 여전히 안쓰러운 얼굴로 내 등을 쓸어주었다. 그 손길이 너무 끔찍
하게 느껴져서 나는 슬그머니 몸을 피했다.
 “괜찮아. 이제 갈래.“
내가 가방을 들쳐 메자 반장은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가.“
어지러웠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얼마나 다르기에 이렇게까지 끔찍할까. 나
는 냄새라도 풍기는 것일까? 발정난 암캐처럼 내 주변에는 심명환이 같은 
놈들이 꼬여든다. 끔찍해. 끔찍해. 누군가가 닿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구
토감이 일어났다.
 비틀거리면서 버스 정류장에 섰다. 어지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댈 데
도 없으니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고 버스를 기다렸다. 이런 날은 집에 가 
방안에 틀어박히고 싶다.
 그 때 문득 누군가가 그의 옆에 섰다. 키가 크고, 후리후리한 체격.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 옷빛깔이 이상하게 낯이 익어서 고개를 돌렸
다.
큰 키에 무심한 얼굴. 갈색으로 그을렸지만 묘하게도 차가운 느낌이 드는 
표정을 가진 그.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그 사람이었다.



Blue Blue Friday  3. 윤이원

하품을 하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옆에 서 있던 녀석이 갑자기 
비틀거린다.
뭐야 싶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더니 녀석은 바닥에 주저 앉아 버린다. 
거참 이상한 놈일세. 귀찮은 생각이 들어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버스는 오지 않았고 주저 앉은 녀석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픈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모르는 놈에게 친절을 베풀정도로 나는 관대하지않다. 팔짱 끼
고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아줌마가 주저 앉은 그 녀석
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봐, 학생. 학생. 괜찮아?“
 “...........“
녀석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울기라도 하는 것인지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교복을 보니 모르는 학교다. 
 “거기 학생, 이 학생좀 부축해서 저기 앉혀보지 그래?“
참견장이 아줌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쏘아보자 마치 말을 잘못했
다는 듯 입을 다문 아줌마는 얼른 내게서 시선을 피하더니 녀석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비틀거리던 녀석은 아줌마에게 이끌려 보도블럭 구석에 있
는 낡아빠진 벤치에 주저 앉았다.
버스는 더럽게도 안 온다.
 “저기........“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녀석이 말을 걸었다.
나는 처음에 내가 아닌 줄 알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으나 조금 더 큰 소리
로 녀석이 부르기에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조금 놀랐다.
흰 얼굴에, 붉은 입술이 도드라지는 그 얼굴은 사실 엄청난 미인은 아니었
지만 눈에 확 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흑백 분명한 반달의 눈매는 어딘
가 옛 미인도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나, 못 알아보겠어?“
어디선가 얻어맞은 듯한 인상이었다.
나는 첫 눈에 그 놈이 누구라는 것을 알았다. 심명환이의 깔이었던 녀석. 
김정인.
 “김 정인?“
 “...........이름, 기억하고 있었네?“
어울리지도 않게 피식 웃는 모습이 묘하게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자기 이름 부르라고 지랄했던 녀석답지 않은 소릴 하는 군.“
내가 피식 웃자 녀석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뭐야? 전학갔었나?“
낯선 교복을 보고 내가 묻자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을 똑
바로 보지 않는 그 모습이 어쩐지 어설퍼서 나는 이 자리를 빨리 뜨고 싶
었다. 하지만 버스는 오지 않는다.
 “너, 이름 뭐야?“
갑자기 묻는 그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이 녀석, 감히 이름을 물어?
 “너가 아니야. 건방지게 반말하지 마.“
 “..........3학년이었군요.........“
한동안 더듬거리더니 녀석은 나를 천천히 올려다 보았다. 
역광 탓인지 눈부시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던 녀석은 속삭이듯 물었다.
 “이름, 뭐예요?“
 “알아서 뭐하게?“
복수라도 하려고 하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은 묘하게도 투명한 시선
으로 날 바라보았다. 원한이 맺힌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때보다 더 
성숙한 듯한 묘한 표정이었다.
 “그냥요.“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왔냐?“
나는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마침 이 귀찮은 대화를 끊어주듯이 버스가 
왔다. 내가 버스에 올라가려 하자, 갑자기 녀석이 내 소매를 잡았다.
 “뭐야?“
이 대담한 행동에 놀라 돌아보자 녀석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얼굴
로 중얼거렸다.
 “같은 버스에요.“
왜 그랬을까. 나는 녀석의 팔뚝을 잡고 버스를 타도록 도와주었다. 녀석은 
내 손이 닿자 움찔했지만 떼어 내려고는 하지 않았다.
 탈진. 그래, 녀석은 탈진한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침 빈 자리가 있기에 녀석을 그리로 몰아 주었다. 정인이란 놈은 앉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땀방울 맺힌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방.....“
 “됐어.“
어차피 무거운 것도 아니었다. 
하얀 목덜미가 정말로 가늘었다. 그 때도 꽤나 말라 있었지만 지금은 어딘
가 기묘하게 지친 것처럼 보여서 악바리처럼 바락거리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녀석은 차창 밖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친 것처럼 이마에서는 
땀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무의식 중에 저러면 정말로 쓰러지는 것은 아
닐까 할 정도로.
 “다음에 내려요.“
녀석이 비칠거리고 일어서는 것을 나는 묵묵히 피해 주었다. 녀석은 잠시 
망설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가방을 옆에 끼고 
불안하게 움직였다. 버스가 난폭하게 정류장에 서자, 그는 버스에서 내렸
다. 약간 비틀거렸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막 가려다 말고 마치 나와 잘 아는 사이인양 고개를 돌리고 창 밖
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얀 손. 하얀 얼굴.
 그리고, 녀석은 말 그대로 비틀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쓰러지겠다.
 “아저씨! 내려요!“
나는 고함을 질렀다.
버스 운전사가 나를 기분나쁘다는 듯 노려보았지만 그래도 출발하려던 버
스는 잠시 멈춰 섰다.
 나는 약간 걸음을 빨리해서 비틀거리는 녀석의 뒤를 쫓았다. 녀석은 나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걷고만 있었다. 정말로 목적지가 있을까 싶을 정도
로 휘청거리는 걸음새였다.
 제길, 내가 왜 심명환이 깔이었던 자식을 상대로!



Blue Blue Friday  4. 김정인

의외였다.
나를 경멸하는 게 아니었던가?
그는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나를 부축도 해 주었고 마치 보호라도 하듯 
의자에 앉혀도 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달아 오를 것만 같았다.
 
착각하지 마. 그냥 그냥, 이 사람은 그냥 내가 비틀거리니까 이렇게 할 뿐
이야. 

혼자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의 시선을 느꼈지만 심명환때처럼 거슬리거나 역겹지는 않았다. 아, 역시 
나는 게이가 되어가는 것일까? 어째서 이 사람은 싫지 않은 거지? 그 끔찍
한 그 몰골을 다 본 사람인데도? 어째서?
 식은땀이 온 몸을 적셨다. 눈 앞이 깜깜할 정도로 피곤했다. 얻어맞은 것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피곤해서 인 것일까.
 현기증이 났다. 욕지기도 났다. 
안 돼, 여기서 약한 모습 보이지 마. 견뎌야지.
나는 필사적으로 이런거 저런 것을 생각했다. 만약에 이 사람이 나에게 정
말로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아니지. 그런 건 생각하지 말자. 이젠 더 
이상 남자와 관련되는 일은 질색이야. 나는 남창이 아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걸레가 된 주제에 이번에는 또 뭘? 어떤 남자를 물 참이야? 하하. 심명환, 
너 참으로 날 잘 길들여 놨구나. 대단해. 나, 정말로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나봐.

 “다음에 내려요.“
그렇게 말하고 어색하게 일어섰다. 현기증이 났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는 내가 어떻게하나 묵묵히 지켜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끼고 어떻게
해서든 바로 걸어나가리라 결심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도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줄기에 마치 화살이 박히는 것 같다.
 “안녕히. 감사했습니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들리고 손을 들어 보였다. 차 안에서 그는 내 얼굴을 
보고 약간 미간을 찌푸리는 것 같았다.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내가 우습다고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 미쳤어.“
나는 비틀비틀 걸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팔, 그가 잡았던 팔 언저리가 뜨거웠다. 나는 남창이 아냐, 정말로 아냐.
 이건 틀림없이 그가 친절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내 주변에서 정
말로 순수하게 친절을 베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기에,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갑자기 발을 헛디뎠다. 막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팔을 턱 하고 잡았다.
 “정신 차려.“
고개를 드니 놀랍게도 그 였다.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는 내 팔을 잡아 당기
더니 바로 근처에 보이는 패스트푸드 점으로 나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걱정되서 버스에서 내린 것은 아니지?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그에게 끌려 패스트 푸드 점까지 들어섰다. 
그는 나를 밀어 자리에 앉히더니 짧게 말했다. 
 “세수하고 와.“
 “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는 뭔가 화가 난 것같은 말투였고 나는 조금 무서웠다. 순순히 일어나 
세수를 하고 돌아오자 그는 오렌지 주스와 이런 저런 것을 시켜 놓고 앉아 
있었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그가 이런 패스트 푸드 점에 앉아 있는 게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붉은 색의 타일과 아동틱한 좌석 속에서 그만이 
홀로 이질적이었다.
 “이름, 뭐예요?“
나는 대체 왜 이렇게 대담하게 구는 걸까?
나는 멍청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그는 다소 미간을 찌푸리더니 짧게 말했
다.
 “먹어.“
 “사 주시는 거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주저 하지 않고 스트로에 입을 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의외로 굉장히 
갈증이 나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주스를 하나 다 마시고 나자 
그는 콜라도 한 잔 더 내밀었다. 나는 그의 몫까지 마시고 나서야 정신이 
든 것같은 기분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작은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하자 그는 물끄러미 날 바라보더니 물었다.
 “어느 학교야?“
 “......매성이예요. 이 근처에 있어요.“
 “멀리도 전학왔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어떻게 여기에 오신 건가요?“
 “........볼일이 있어서.“
그는 짧게 말하고는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흠칫 놀라는 나를 아랑곳 하지
도 않고 그는 내 이마를 쓸어 올렸다. 땀방울인지 물방울인지 잘 알 수 없
은 것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을 그는 머리카락과 함께 쓸어 올려 주었
다. 온기.
 “아....“
그랬다. 
유일한 온기였다. 그때 내가 느꼈던 유일한 온기.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한 기분이 되어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앞에서도 울지 않았었다. 그 동안에 겪었던 모든 일에 걸고 나는 울
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이다.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내민 손 안의 온기가 너무
나 좋아서 순간적으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이 사람이 내민 손으로, 나는 다시 사람이 되었다.



Blue Blue Friday 5. 윤이원

 “들어와.“

조금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그대로 놔둬선 안 될 듯한 생각이 들어서 나는 결국 녀석의 팔을 잡아 당겼다.
 
 내 손이 닿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는 녀석을 가만 놔둘 수는 없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냉혈한이라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머뭇대지 마!“
조금 짜증을 내자 녀석은 어색한 몸짓으로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아.“
녀석은 오피스텔을 멍하니 돌아보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온통 누드화가 가득한 방안이 너무도 어색했을 터였다. 나역시 어쩐지 누드화로 가득한 이 방안에 서 있자니 어색한 기분이 되었다.

 “우리 외삼촌 꺼야. 이제부턴 내 것이 되었지만.“

나는 담배를 물면서 주변을 설명해 주었다.



 닷새 전에 외삼촌이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내가 외삼촌의 상속인이라는 뜻밖의 말도 들었다. 외삼촌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아내도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상속 받을 인물도 아무도 없었다.


 무리도 아니다. 외삼촌은 게이였다. 그 중에서도 트랜스. 
요즘에야 하리수가 있으니 그렇다치지만 트랜스 젠더는 어디다 내 놓고 말도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냥 게이도 아니고 트랜스라니.
 미대를 나와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외삼촌은 그곳에서 일본인 남자와 같이 살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곤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해서 3년 전에 돌아왔다. 이런 황당한 가족이 내 주변에 있으리라고는 나 역시 상상해 보지 못했지만 남자치고는 가냘픈 외삼촌의 모습에 적지 않게 동요했다.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외삼촌은 나를 붙잡고 울었다. 아버지는 이 황당한 처남에게 뭐라 말도 차마 붙이지 못했지만 나는 호기심이 혐오감을 한층 덮고 있던 차라 가볍게 말해주었다.

 “외삼촌? 이모라 불러줄까?“

 울면서 빨갛게 된 얼굴을 한 채 당혹한 표정을 짓던 외삼촌은 화장기 없는 얼굴을 북북 문지르면서 내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말투가 왜 그래?“
 “뭐가? 존댓말 듣고 싶어?“
내가 버팅기자 외삼촌은 웃어 버렸다. 그리고는 가짜 가슴이 분명한 그 풍만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내가 외삼촌의 가슴을 더듬자 그는 비명을 올리면서 나를 쏘아보았다.

 “진짜같아.“
 “뭐, 뭐,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옆에서 얼어 있던 아버지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외삼촌은 빨개진 얼굴로 나를 향해 잔뜩 눈을 흘기더니 내 귀를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키는 나보다도 작은 주제에 왜 이리 손이 매운지, 나는 나를 잡아 당기는 외삼촌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아프단 말야! 놔! 이 가짜 삼촌아!“
 “누가 가짜란 말이야?“
 “그럼 그 꼴이 삼촌이냐? 이모지!“

 나는 그 얼굴에 기쁨이 서린 것을 분명히 보았다. 아버지는 어색한 기침을 하고 있었지만 내 말에 기뻐하는 삼촌의 얼굴은 여자의 것이었다. 허긴, 나는 이미 그 당시에 여자에게 꽤나 인기가 있긴 했었다.

 어쨌든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자리 잡은 삼촌은 화실을 차렸다. 화실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교사들이나 모두 삼촌이 전부 여자인줄만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삼촌이 그 중 한 교사를 좋아하게 되면서 부터 일이 꼬였다. 결국,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던 젊은 미술강사는 삼촌의 주민등록 번호를 보고 삼촌이 남자였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나는 그의 충격이 더 큰지 삼촌의 고통이 더 큰지 알지 못한다. 아니, 나로선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자는 반쯤 미쳐 날뛰다 시피했고 삼촌은 매일 그에게 맞으면서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 같다. 결국 남자는 폐인이 되다시피해서 삼촌에게 애원했다. 헤어져 달라고.

 남자가 떠난 뒤에 삼촌은 손목을 그었다. 그리고 그 장례식장에 헐레벌떡 왔던 남자는 머리를 싸매더니, 그 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버지와 장례식을 치르던 나는 그 남자의 애통하다 못해 절망적인 울음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게 바로, 닷새 전의 일이다.


 

 “내 앞으로 상속된 거지. 닷새 전에 삼촌이 죽었거든.“

 내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은 얼굴이 된 녀석을 보고 나는 턱짓했다.
 
 “조금 지저분하지만 앉아. 마실 거 라도 더 주랴?“
 “아, 아니.“

 녀석은 거절했지만 나는 녀석의 바짝 마른 입술을 보고 있었다. 갈증이 나는 듯 입술을 핥는 그 혀가 꽤나 눈에 띄어서 나도 모르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게 눈에 띄인다고 해서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어서 비치된 냉장고문을 열어 그 안에서 콜라를 하나 꺼내 건네주었다.



 오피스텔은 삼촌이 살던 곳이었다.
삼촌은 꽤나 멋진 남자 몸매를 좋아했던 거 같다. 뭐 게이이니까 당연한 건가. 사방에 널린 유화나 수채화, 혹은 크로키의 그림들은 전부다 남자의 나체였다. 어쩌면 이 중에 그 울부짖던 남자의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 혹은 내 것이 있을 지도.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나는 차곡차곡 쌓여 있는 스케치북을 꺼내 보았다. 정인이 놈도 호기심이 났는지 내 옆에 살금 다가오더니 내 등너머로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온통 다 남자의 누드 뿐이다. 그러나 얼굴은 없었다. 모두 상반신, 하반신, 혹은 다리, 팔, 손, 등, 이런 식으로 부분 부분 그린 게 전부였다. 그림을 별로 알지 못하는 나로서도 정말로 잘 그렸다 싶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긴, 삼촌의 콜렉션 중에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하는 그림도 몇 점 끼어 있었다. 아마 일본에 있었을 때 애인에게서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기, 삼촌이 화가였어요?“
 “응.“
정인이 의외로 자기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내가 순순히 대꾸하자 녀석은 감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멋진 그림이네요.“
 녀석이 문득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창가에 그려진 그림은 등을 그린 그림이었다. 연필 스케치였는데 캔버스에 그려진 탓에 꽤 그럴듯 해보였다. 나는 문득 그게 누구인지 알아버렸다. 저 등은 내 것이다. 허리춤에 있는 길죽한 흉터는 분명히 내가 1년 전에 얻은 상처였다.

 그러고 보니 내 그림이 꽤 널려 있는 것도 같았다. 스케치북을 자세히 보다보니 허리에 흉터가 있는 그림이 꽤 된다. 게다가 손등에 작은 점이 있는 내 손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삼촌은 꽤나 관찰력이 대단한가보다. 

 내가 삼촌 앞에서 벌거벗고 있었던 때는 그다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잠깐으로 이렇게나 기억을 했단 말인가.

 “근사하다.“

정인이가 내 등을 보고 말했다. 나는 조금 겸연쩍어서 저거 나다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나라도 알몸둥이 드러내고 잘난 척하는 취미는 없었다.

 “나, 미대 갈까 생각한 적 있었어요. 만약에 가려고 한다면 역시 작년부터 준비했어야 했는데.“
 어눌한 어조로 말하는 정인이 녀석이 조금은 묘한 기분이 되었다. 작년이라면 역시 그 놈의 심명환이가 녀석을 깔아버릴 즈음일까.

 “그럼 가.“
내 말에 녀석이 놀란 듯 나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2학년도, 2학기가 막 시작된 때에요. 지금부터라면 이미 늦었......“
정인은 갑자기 말하려다 말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면 어때? 미친듯이 하면 될지 어떻게 알아?“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녀석은 잠시 생각에 잠기듯 입을 다물었다. 혈색을 되찾은 얼굴이 꽤나 사람몰골이 되었기에 나는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너 심명환이 때문에 망가져서 그렇지 꽤 공부 잘하던 놈이었다면서? 아무리 망가져도 기본이 있을 테니까 지금 부터 하면 뭐든 되지 않겠어?“

이거 참, 나 답지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녀석의 얼굴이 심명환의 이름으로 흐려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녀석은 움찔했지만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될까요?“
 “그거야 네 할 나름이지.“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녀석은 문득 새빨갛게 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목덜미까지 붉어진 그 목에 불현듯 가슴이 시렸다. 


 “저기, 저어.....“
 “뭐야?“
녀석이 문득 주저하면서 입을 열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지만 나는 그 빨개진 귓볼을 볼 수 있었다. 묘하다.정말 묘한 기분이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미대에 들어가게 되면.......“

녀석이 문득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보았다. 일렁이는 눈빛에 물기가 서려 있어 가슴이 순간 철렁했다.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새끼, 또 울어? 너무 황당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녀석이 애써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저기, 그러니까!“

말을 또 더듬기에 짜증이 나서 손을 뻗어 그 눈가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따끈한 눈물이 손바닥에 와 닿자, 이루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 가슴속으로 퍼져나갔다. 

눈물이란, 따스하다. 

처음 느끼는 기묘한 그 감각에 나도 모르게 홀린 것만 같았다. 남이 우는 것은 몇번이나 보았는데 대체 왜 이 놈이 우는 데 신경이 이렇게나 쓰이는 것일까.

 녀석은 새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는 것을 멍하니 보던 녀석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입술에 댔다.



 그리고는 내 손에 키스했다.



Blue Blue Friday 6. 김정인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그의 손을 잡고, 그의 손바닥에 키스를 했다. 
대체 이 사람이 나를 뭘로 볼까? 변태? 혹시 나를 미쳐버린 것으로 아는 것은 아닐까? 아
니면, 남자에 미친 암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뭐에 홀린 것 처럼 그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도 내 손을 뿌
리치기는 커녕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믿을 수가 없다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문득 그가 손을 내밀어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손목을 잡았다. 나는 그때서야 제 정
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면서 그의 손을 놔주었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해야한다는 생각만 
들어 나는 미친듯이 도망가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단단했다. 

 “발버둥 치지마.“

너무나 태연한 그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그만 좀 울어. 눈탱이가 밤탱이다.“

그의 말에 나는 멍하니 멈춰 서서 고개를 떨구었다. 부들부들 몸이 떨렸지만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당신의 손바닥에 키스해서 미안합니다?

수십가지 망상이 수십번 떠오르다 사라졌다. 내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는 피식 웃더니 갑자기 킬킬 거리기 시작했다. 소리내어 웃는 그를 차마 보지도 못하는 나
를 향해 갑자기 그가 내가 키스한 손바닥을 내게 내밀었다.
 
 “목 되게 마른가부다. 너.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내 손바닥의 자기 눈물까지 빨아 먹는 거
냐?“

 그 말에 나는 온몸의 피란 피가 전부 다 얼굴로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앉아. 밤탱아.“

그가 막 턱짓을 하는 의자에 멍청하니 주저 앉자 그는 담배를 처억 하니 붙이고는 연기를 
내뿜었다. 담배 연기.

 싸아한 담배연기가 방안에 구름처럼 퍼져나갔다. 나는 그 연기가 흩어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사람으로 만들고, 또 나를 멍청하게도 만들고, 또 엄청나게 대담하게도 만들고, 
또 나를 울보로도 만든다. 

 
 “그래, 아까 하던 이야기 계속해봐.“

갑작스런 그의 말에 나는 흠칫 떨었다.
 
 “쫄지말고 말하라구. 뭘 말하려고 했어?“

그는 웃긴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연기를 내뿜었다. 

 잘생긴 얼굴이다.
아니, 그냥 잘생긴 그런 얼굴이 아니라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강인한 얼굴. 객관적으로 
보면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지도 모른다. 어떻게보면 굉장히 평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에게는 강한 매력이 있었다. 같은 남자가 봐도 괜찮은데 라고 말할 만한 그 어떤 것. 그냥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매력에 대한 그 어떤 것.

 입가에 작은 여드름이 두어 개 나 있었다. 수염자국도 있었다. 눈은 약간 가늘게 찢어져서 
무심하게도 보이고 웃으면 장난스럽게도 보였다. 


 이 얼굴이었다. 

그 날 이후 내내 이 얼굴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계속해서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었다. 


 그래, 너는 김정인이야

 
라고.



나는 넋을 잃고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내가 넋을 잃었는지 그가 기
가 막히다는 듯 담배를 비벼 끄며 다시 말을 걸었다.

 “야, 그렇게 내가 잘생겼냐?“

 “아? 아, 아녀요!“

내가 당황해서 소리치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잘생기지 않았단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허둥거리는 것을 그는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더니 다시 재촉했다.

 “말해 봐. 네 놈에게서 듣고 싶은 거 들으려면 말 그대로 진이 다 빠지겠다. 얼른 지껄여
봐.“

 “그.......“

나는 멍하니 서서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일몰의 붉은 햇빛이 방안에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지는 해를 
받아 약간은 붉어져 있었는데 그게 너무나 아름다웠다. 대체 나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구는 
걸까.

 지는 해 탓인지 그의 키보다도 더 긴 그림자가 방안에 길게 드리워졌다. 방안에서 나는 물
감냄새와 오래된 먼지 냄새. 그리고 담배 냄새가 어우려져서 그다지 숨쉬기 좋은 공간은 아
니었다. 그보다는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묘하게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나, 그러니까.......대학을 가면, 미대를 가면 저 그림을 혹시 주실 수 있나요?“

내가 손을 뻗어 창가의 그림을 가리키자 그는 크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나와 그림을 번갈아보더니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내가 왜 너에게 그걸 상으로 줘야 해?“
 
그는 이상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황혼때문인지 그의 얼굴이 조금 달아올라 있었다. 
화가 났을까? 역시 안 되는 걸까? 하지만 나는 저 그림이 한 눈에 마음에 들었다. 특별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뭔가 매혹적인 곳이 있었다. 얼굴도, 팔도, 다리도 보이지 않고, 그저 약
간 비튼 어깨와 등, 그리고 허리까지만 그려진 그 그림은 구도고 뭐고 다 이상했지만 묘하
게도 마음을 끌었다.

나는 조금 억지를 쓰기로 했다. 그가 내가 말한 것이라면 뭐든 다 들어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상황 자체가 너무 꿈같아서 일까. 

 “어차피 선배는 그림에는 관심 없잖아요? 그러니까 날 주면 안 돼요?


오늘의 나는 너무나 이상하다. 
오늘의 나는 너무나 대담하다.


 “야, 내가 왜 네 선배냐? 학교가 같지도 않은데.“
그는 핏 하고 비웃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이름, 가르쳐 주지 않았잖아요?“

 “네가 날 경찰에 찌를 지도 모르잖아?“

그는 어깨를 으슥하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조금 가슴이 아팠다. 

 맞다. 내가 엉망이 될 때 그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안 해요.“

 “뭐?“

 “원망 안한다고요.“

내 말이 너무 뜻밖이었는듯 그가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를 심명환이에게서 해방시켜 줬잖아요? 그래서 나 살아 갈 수 있게 되었는데요. 그러니
까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잊고 있었다. 그는 나를 심명환이의 버려진 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친절하니까 나를 이 정도로 대우해 준 것 뿐. 이런 몸뚱이를 그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니, 그는 남자를 끌어 안는 취미는 없다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니까, 나의 이 미친 것 같은 짓거리는 그에게는 절대로 통하는 게 아니다. 그는 심명환
이처럼 미친 놈이 아니었고 나처럼 한 번 본 남자에게 미쳐버린 덜 떨어진 암캐도 아니니
까.


 “.....그런데 너 왜 울어?“

갑자기 그가 물었다.

 “아?“

 내가 또 줄줄 울고 있었나 보다. 대체 왜 이럴까?
몸 어딘가가 고장 난 걸까? 나는 피싯 웃었지만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내 몸뚱이도 이상도 하다. 왜 눈물이 이렇게나 계속 흐르는 걸까.

 “후우. 정말......“
 
그가 갑자기 한 걸음 앞으로 왔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내 행동을 보고 눈을 크게 떴지만 그다지 
개의치는 않는 듯 다시 손을 뻗어 내 뺨을 커다란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쓸
어 내렸다. 눈물을 닦는 게 아니라 쓸어 내리는 그 동작에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그 단순한 동작에 나는 온 몸이 달아 오를 것같은 감각을 느꼈다.
 몸 안 깊숙한 곳에서 작은 불씨가 점점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불씨는 잠시 후 활활 불
타올라서 내 몸 전체를 태을 듯 커졌다. 아랫도리가 뻐근해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심
명환이에게 당한 이후 단 한 번도 발기한 적이 없었다. 이 생소한 감각에 나는 당장에 기절
할 것같은 기분이 되었다.

 들키면 안 돼.
 
 절대 안 돼!
 
 이 사람에게만은 절대로 들킬 수 없어!


 나는 결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갑작스런 내 태도에 그의 놀란 듯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그대로 오피스텔의 문을 열고 뛰쳐 나갔다. 불룩해진 앞 섶이 점점 불편해지
기 시작했다. 
 
 “야! 김 정인!“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당장이라도 사정할 것같은 감각
에 휘청거렸다. 결사적으로, 거의 필사적으로 달렸다. 이 추한 모습을 그에게는 절대로 들키
고 싶지 않았다. 나, 난 아무래도 정상이 아냐!


 울면서 나는 급히 공중화장실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문을 잠그고 미친 듯이 자위를 시
작했다. 팽팽해진 것을 거칠게 문지르면서 나는 계속 울었다. 내 것을 문지르면서 계속 흐느
꼈다.

 그의 손바닥. 그의 손의 온기. 담배 연기 속에 있던 그의 웃는 얼굴.

 귓가에서 내내 그가 부른 내 이름이 맴돌았다.

 <김정인>하고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금새 절정에 달해버렸다.
 

 “허윽, 허억,우우우욱.....“


 허연 정액을 보고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났다. 이 추한 내 자신이 너무나 싫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축 늘어진 내 페니스가 너무 추했다. 당장이라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추했다.



 “어헝,어어어엉....“

나는 더러운 변기를 잡고 흐느껴 울었다. 정말로,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Blue Blue Friday 7. 윤이원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있긴 뭐가 있냐?“
 “그런데 왜 학교만 끝나면 싸악 사라져 버리는 거야?“

주섭이가 나를 조금 쏘아보며 물었다. 나는 주섭이와 주섭이의 무릎 사이에 앉아 있는 중건
이를 번갈아 보았다. 사실 사내들끼리 겹쳐 앉는 거 정도야 대단한 일은 아닌 줄 알긴 하지
만 이 두 놈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새삼 알고 나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였다.

 점심 시간 옥상에 모여 앉은 우리들은 담배를 피워대고 있는 중이었다. 고3이라는 이 멋지
구리한 지위는 선생들도 우리들을 그다지 터치하지 않게 해주었다. 덕분에 언제나 흡연은 
여유가 넘쳤다.


 “나도 참......“
옆에 있던 주환이가 한숨을 내쉰다. 녀석은 중건이와 주섭이를 번갈아 보더니 한심스럽다는 
듯 연기를 길고도 길게 내뿜었다.

 “정말 이거야 꽤나 유해환경 아니냐. 게이 친구가 둘이요, 나뭇토막이 하나니.“
 “좆까, 새꺄.“

 중건이가 킬킬거리면서 꽁초를 날렸다.
녀석은 정말 주섭이의 벌리고 앉은 다리 사이에 앉아 주섭이를 의자 삼아 기대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소중하다는 듯 끼고 앉아 있는 주섭이도 참으로 놀랄만하다. 대체 저 덩치 중
에 누가 깔고 깔리는 지 궁금한 적도 있긴 했다. 주섭이나 중건이나 둘 다 180을 너끈히 넘
는 키에 체중이나 적은가. 
 그러나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둘이서 번갈아 하고 있긴 하지만 주로 깔리는 건 중건이다. 
나중에 허리를 부여잡은 중건이에게 왜 깔리냐고 물었더니 녀석이 시뻘개진 얼굴로 대꾸했
다.

 “반한 게 죄지 뭐.“

트렌스 젠더 삼촌을 가진 나와는 달리 사실 주환이는 꽤나 쇼크였던 것 같다. 그는 중건이
와 주섭이의 키스신을 보고 거의 발광직전까지 가서 중건이를 두들기며 차라리 나가 죽으라
고 소리를 질렀었다. 그러나 중건이가 순순히 맞자 더 화가 났었는지 그 다음에는 주섭이를 
찾아 주먹질을 해댔다. 그러나, 주섭이가 어디 순순히 맞을 놈인가. 녀석은 중건이가 늘씬하
게 맞았다는 것을 알자 눈알이 뒤집혔는지 말 그대로 주환이를 죽지 않을 만큼만 패줬다.

 “미친 새끼들, 대체 뭐가 모자라냔 말이야!“
얼굴이 떡이 된 채 주환이는 나를 붙잡고 울었다. 
 “사내끼리 붙어 먹는게 얼마나 더러운 짓거리냐구. 이 미친것들아. 앞으로 어떻게 하려구 
구래!“
엉엉 울어대는 주환이를 보고 참 난감했었다. 
이 무뚝뚝한 돼지 같은 놈이 그렇게 우는 건 나도 첨 봤다. 더 웃기는 건 녀석이 엉엉 땅을 
치고 통곡하는 것을 보고 중건이도 미안 미안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옆에 서 
있던 주섭이는 뻘쭘해져서 나와 어색한 시선을 짓더니 갑자기 울어대는 중건이를 들쳐업고 
사라졌다. 그 사라지는 꼬락서니가 기가 막힌 지 주환이가 울다가 갑자기 날 보고 물었다.
 
 “저 새끼들 설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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