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설이.. 모호한 행복감.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영민이 만났던 일반적인 이성과의 입맞춤과도 달랐고, 그동안 늘 동생이 잠 못 들 때마다 해주었던 가벼운 입맞춤 때와도 달랐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 가슴에 스며든 동생의 향기, 그 달콤함에 오랜만의 입맞춤에서 오는 낯 선 감정 까지, 그 짧은 입맞춤 순간 영민에게 수많은 느낌들이 스쳐 지나갔다. 울보 꼬맹이었던 6살 아래 동생과의 입맞춤 순간에 왜 이런 느낌들이 스쳐 지나가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입을 맞추고 있던 그 순간 스쳐갔던 느낌 전부가 모두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었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잘자. 이쁜 내동생.” 입술을 뗀 영민은 아쉬운 마음과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정리하며 동생을 바라보았다. 방안으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만으로도 동생의 얼굴을 선명히 바라볼 수 있었다. 어두웠지만 설이의 얼굴을 보기위해서는 창문사이로 스며들어오는 그 약간의 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어둠을 밝히는 일은 거창하고 커다란 조명이 필요한 일이 아닌 그렇게 작은 불빛만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침 햇살이 영민의 집을 눈부시게 비췄다. 아버지는 어제 드신 술이 덜 깨셨는지 아침부터 한바탕 고성이 오갔다. 영민은 일찌감치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군대에 있을 때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렸던가! 동생의 심란한 마음도 풀어줄 겸 군에 있을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실컷 해볼 작정이었다. 이제 막 초여름이 시작 된 날씨는 제법 더웠다. 영민은 곰 모양이 그려진 곤색의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영민의 눈매 끝이 살짝 올라가 있어 무표정으로 있을 땐 제법 매서워 보인다. 하지만 약간의 볼살과 웃는 얼굴 상을 만들어주는 입술 덕에 전체적인 인상은 좋아 보인다. 피부는 군대에 있을 동안 그을려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였지만 피부 상태는 관리 안한 남자피부 치고는 깨끗한 편이였다. 누구나 다 인정할 만큼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호감을 느낄만한 호감형의 얼굴이었다. 오히려 너무 잘생겨서 부담스러운 외모보다 편안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지금 입고 있는 반팔티에 그려진 곰 문양이 제법 잘 어울렸다. 반팔티를 입고 있는 상체는 군 생활 동안 열심히 운동을 한 덕분인지 제법 근육이 잡혀있었다. 특히 맨살이 드러나 있는 팔뚝은 잔근육이 섬세하게 발달되어 단단한 모습이었다. 군대 가기 전만 해도 그냥 마르기만 한 체구였던 것을 생각하면 군대에서의 운동량과 작업량이 보여 지는 것 만 같았다. “오빠~ 근데 몸 진짜 좋아졌다. 운동 많이 했어?” 설이가 천진 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설이는 오늘 핑크색과 녹색의 작은 꽃무늬가 수놓아져있는 흰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목은 살짝 파인 라운드에 레이스 장식이었고, 그 사이로 하얀 피부와 쇄골부분이 드러났다. 어깨에서 팔로 연결되는 부분은 꽃무늬 수가 들어간 망사부분으로 돼있어 가늘고 예쁜 팔이 노출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치마 길이는 무릎 살짝 위로 올라가 설이의 예쁜 종아리가 아름답게 드러난 옷차림이었다. 바람이 살랑 불 때면 설의 치마도 살짝 올라가 설의의 군살 없는 허벅지가 드러나기도 했다. 설이가 예전 보다 많이 예뻐졌단 생각을 하며 설이를 바라보던 영민은 설이의 갑작스런 물음에 갑자기 몸에 오한이 들었다. 운동? 물론 많이 했지. 하지만 입대 초기부터 작업에 정말 열심히 성실히 한다며 행보관 눈에 들어 부대의 온갖 작업에 선봉이 됐었다. 덕분에 휴가증 몇 장 챙겨 받긴 했지만 그 끔찍한 작업량을 생각하노라면 생각만으로도 토 나올 지경이었다. 팔의 잔 근육은 운동의 결과라기보다 작업의 결과물이었다. 이걸 행보관에게 고마워해야하나. 설이는 갑자기 부르르 떨더니 체한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오빠의 모습을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봤다. 어찌됐든 설이는 오랜만에 오빠와 나온 길이 너무나 즐거웠다. 오빠와 이렇게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 했던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함께 거리로 나온 오빠는 훨씬 더 멋있어져 있었다. 키는 변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더 커진 느낌이었다. 영민과 설이는 커피숖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샷 추가한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달달한 카라멜마끼야또를 주문한 영민과 설이는 길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그동안 설이에게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들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바라봐주는 시간이었다. ‘부대에 있었다면 주말이니 모포, 침낭 일광건조나 시키고 있었으려나. 으 끔찍해.’ 참 좋은 날씨였다. 영민은 설이와 이렇게 나와 좋은 날씨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다소 더울 수 있는 날씨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덕에 그리 더운지 모르고 다닐 수 있었다. 살랑 거리며 귓가를 스치며 부는 바람은 기분을 절로 상쾌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인지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다들 밝은 표정이었다. ‘확실히 사회가 좋긴 좋아.’ 초여름 날씨다보니 여자들이 영민의 입장에서 보기에 참 바람직한 옷차림들이 많이 눈에 보였다. 엉덩이 골이 보일락 말락 하는 짧은 핫팬츠, 등에 속옷 선이 살짝 보이는 시스룩 차림, 예쁜 다리를 한 껏 드러낸 미니스커트, 가슴골이 보이는 시원한 나시티 등등 과감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민통선 안에서 근무하다보니 젊은 여자 보기가 거의 불가능 했던 영민에게 어쩌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 1호가 길거리의 여자 구경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옆에 천사 같은 동생이 함께 있기에 대놓고 여자들을 빤히 쳐다볼 수는 없었지만, 슬쩍 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나름 영민의 꿀 같은 재미였다. “설아~ 이거 마시고 우리 영화 보러가자.” 영민은 두리번 두리번 알게 모르게 바라보던 달콤한 속세의 재미를 내려놓고 설이를 바라보았다. “응응. 나도 영화 보고 싶었어. 영화 얘기 하니까 진땡에게 좀 미안하네.” 설이도 오빠와의 이런 데이트를 몹시도 기다린 눈치다. “진땡?” “응, 오빠. 내 친구 진영이 알잖아. 어제 놀토라고 같이 영화 보러가자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거든, 오빠 마중가야 된다고, 영화 이야기 나오니까 왠지 미안하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몇 번 집에 놀러와서 인사를 했던 진영이란 아이가 기억이 난다. 항상 눈웃음을 짓고 있어서 귀여워 보이던 꼬마였는데 그게 벌써 꽤 예전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영민은 왠지 언제인지 모르게 지나가버린 그 시간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빠가 진영이란 친구 영화 한번 보여줄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너랑 가장 친한 친구 아니야?” 영민은 가볍게 말했다. 사실 영민의 입장에서 영화 한편 보여주고 밥 한끼 사주는 게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 였다. 자기가 없을 때 동생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을 동생 친구에게 가볍게 약속 해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배려였다. “아 진짜? 우와~ 진땡 좋아하겠는데. 매일 심심하다고 노래를 부르는 애라. 아 얘 집이 근처인데 말 나온 김에 오늘 보자고 할까?” 설이는 영민이 말을 꺼내놓기 무섭게 반가운 목소리로 정신 없이 말을 이었다. 오빠 없는 2년 동안 자기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고 집의 사정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단짝이었다. 항상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저런 배려를 보여주는 오빠가 참 고마웠다. 설이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과 함께하는 데이트인 것이다. 영민은 말 꺼내기 무섭게 부른다고 하는 설이의 반응에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미루지 않고 만나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설이가 저렇게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무리 지독한 냄새도 바람이 불면 그 냄새가 차차 옅어지다 언제 그런 냄새가 존재했냐는 듯 희미해진다. 분명 그 지독한 냄새를 이루고 있었던 구성요소들은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지만 더 많은 무향의 바람에 의해 느끼지 못하는 존재화 되는 것이다. 어제 설이를 괴롭혔던 그 무섭고 슬펐던 감정들도, 진저리 칠만큼 지독했지만, 곁에 있어주고 있는 영민과 소중한 친구가 불어주는 바람 덕에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흔적은 영원히 사라질 수 없지만 말이다. 설이가 진영에게 연락하고 설이와 영민은 진영이 올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이의 학교 이야기와 군대이야기가 주였다. 영민은 전역하기 전 예비역들의 군대 얘기를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중 하나라는 것을 알기에 전역하면 절대 군대얘기 하지 말아야지 결심 했었었다. 허풍 섞어가며 시도 때도 없이 군대 얘기만 해서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선배, 남자사람이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이는 이상하게도 영민의 군 생활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듣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설이의 물음에 시작된 군대 이야기였지만, 이야기가 시작 되고 난 후 어느 시점부터는 영민 본인도 모르게 신이 나서 군 이야기를 설이에게 정신 없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야간에 위병소 근무를 갔는데.. PX 앞에서 정말 큰 멧돼지와 마주친거야. 가까이서 보니 진짜 위협적인거 있지.” 설이는 영민의 이야기가 흥미 진진 했다. 몇 몇 병영체험 프로그램을 보긴 했지만 실제 군이야기는 그것과 다른 생생함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오빠가 왜 100일 휴가를 제외하고 집에 오지 않았는지, 휴가가 없었는지 궁금해졌다. 오빠와 만난 반가운 마음에 가장 묻고 싶었던, 그 물음을 묻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오빠! 왜 오빠는 100일 휴가 빼고 휴가가 없었어? 다른 오빠들 보면 너무 자주 나와서 동생이 지겹다고 하던데. 오빠가 군 생활 너무 못해서 휴가 없었던 거 아냐?” 영민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지만 설이는 살짝 놀리는 말투로 영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런 동생의 질문을 듣는 순간 영민의 표정이 자기도 모르게 굳어졌다. 잊고 있었던, 애써 지우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마음이 되는 슬픈 기억이었다. 결국 놓고 올 수 없었다.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기억, 그리고 잊어서도 지워서도 안 되는 기억,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설이는 왜 갑자기 오빠의 표정이 굳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왜 갑자기 한순간 슬픈 눈이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아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오빠에게 다시 질문 하는 것, 설이가 다소 놀란 마음으로 영민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멀리서 진영이가 큰 소리로 인사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설~ 안녕! 안녕!” 순간 카페 모든 손님이 쳐다볼 정도로 진영은 활기차고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들어왔다. “어 오빠 안녕하세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헤헤” 글쎄 모르겠다. 진영의 인사를 받는 순간 영민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몇 차례 본적이 있는 동생 친구여서 그럴까 마치 데자뷰 처럼 이 상황을 꿈에서 본 듯한 왠지 모를 익숙함, 그리고 그 익숙함과 함께 몰려오는 묘한 인연의 느낌이 느껴지고 있었다. 진영은 특유의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영민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본 진영의 얼굴은 꽤나 오래전 가물가물한 기억 속 얼굴과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2년 전만 해도 완전히 초등학생 같던 진영의 몸은 이제 어느 아가씨 못지않은 성숙한 몸매로 변해 있었다. 영민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또래보다 확연히 큰 진영의 가슴으로 향했다. 진영의 차림은 그 또래 여학생들이 많이들 입고다니는 티에 핫팬츠를 입은 평범한 차림이었다. 노란바탕에 붉은 색 영어 글씨가 적혀있는 라운드 티는 목선과 쇄골을 약간 드러내고 있었고 적어도 C컵은 되보이는 가슴 부분이 도드라져 있었다. 아래 짧은 핫팬츠는 성숙한 가슴과는 다르게 날씬한 각선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첫눈에 진짜 예쁘다 감탄할 정도의 외모는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그 귀염움에 매료되는 충분히 매력적인 외모였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동안 동생 설이와 진영이 둘 사이에서는 숨 쉴틈 없이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그 수다가 지겨울 만도 하건만 이 순간 끝도 없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영민의 귀에는 노래처럼 들린다. 이 눈부신 여름날에 드문 상쾌한 날씨, 거기에 요 상큼한 귀여운 꼬맹이들과 함께 라니, 영민은 왠지 모를 행복감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막 전역한 영민에게는 그 모든 상황이 각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