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되었다.
시내의 한 이자까야로 재인이를 데려갔다.
영근이, 태민이, 준후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들이 넉살좋게 인사를 했는데 역시 평소와 다르게 긴장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재인이는 억지웃음을 짓는다.
세 친구들을 재인이는 모두 본 적이 있지만 다 같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천칭좌의 재인이는 형석적이나마 활달하게 녀석들을 대해주었고
준후 같은 경우는 과묵한 점이 좋은지 진심으로 호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영근이와 태민이를 근본에서 좋아하지 않았다.
둘 다 늘 오버해서 떠들어대는 게 사기꾼 같다고 했다.
업소 이야기도 실은 두 녀석의 그런 면을 험담하다가 어찌저찌 나온 화제였었다.
그런 게 아니라도 이 자리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재인이랑 나는 딱 열한 살 차이다.
영근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리고, 태민이랑 준후는 영근이보다 한 살이 어리다.
재인이 입장에서는 열 살씩들 나이 많은 아저씨들 틈바구니에 혼자 있는 셈이다.
아저씨들은 어떻게든 화제를 맞춰보려 하지만 내게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진다.
재인이가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랑 둘만 이야기하는 걸 최대한 삼가고 어떻게든 공통의 화제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있잖아요, 아세요? 오빠가 사실은......’
그래도 한계가 있다.
이럴 때는 술, 술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이, 급하게 마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인이는 술이 셌다.
그다지 사정 봐줘가며 마신 게 아닌데도 두 시간 가까이 지났을 때 재인이만이 여전히 새하얀 얼굴빛에 말투도 변함이 없었다.
어쩌면 젊음의 힘이다. 아니면 내심 우리보다 더 긴장해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오늘 이 자리에서 분명히 나올 이야기로 인해서.
“그래서 오늘 2차 가는 거다? 다들 괜찮지?”
적절하다 싶은 타이밍에 내가 말을 꺼낸다.
재인이하고도 (상당히 한참동안의 토론과 성적 흥분으로 인해 오버된 말들을 통해서) 이야기된 것이었고
세 녀석들과도 (간략한 언급과 오랜 음담패설들로) 이야기되어 있었다.
남은 건 내가 다리가 돼서 양쪽을 조율하는 것뿐이었다.
왜냐하면 ‘친구들끼리 업소에 가는 자리를 여자친구가 따라간다’ 라고 했을 때
친구들 쪽과 여자친구가 그리는 그림은 서로 많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겠어요? 재인씨.”
태민이의 얼굴이 반쪽은 가장된 배려와 점잖음으로, 반쪽은 당혹감으로 갈린다.
“거기가, 여자들 입장에서 그렇게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 수 있는데.”
영근이의 얼굴은 분명한 성적 흥분,
일종의 노출증 기대감으로 일관되었다.
준후는 그냥 불안한 얼굴로 아무 말이 없다.
“괜찮아요.”
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은 씩씩하다기보다 거의 퉁명스러운 얼굴로 대꾸한다.
“어떤 데인지 한 번 보고 싶었어요.”
“문제는 그게 아니지.”
내가 끼어든다.
“니네 말이야. 진짜 평소처럼 놀 수 있겠냐? 재인이가 있는데? 재인이 앞에서도 그렇게 놀 수 있겠어?”
“못 놀 건 또 뭐야.”
“아닐 것 같은데.”
내가 말한다. 재인이가 날 흘끔 본다.
내 말투에서 낯선 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나는 술의 힘을 빌어, 친구들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인해,
재인이와 있을 때와는 딴판의 아저씨로 변해 있었다.
“거기 가서 부끄러워하고,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하고,
못 놀고, 빼고 있을 건 니네들일 것 같은데. 아저씨들이 원래 생각보다 섬세하거든.
재인이가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 것도 못 할걸.”
“재인씨가 쳐다만 보고 있으면 안 되지.”
영근이가 웃는다.
“같이 놀아야지. 안 그래요, 재인씨?”
“재인씨는 남자잖아요. 우리 남자들끼리 좋은 데 가는 거예요.
오늘부로 재인씨도 우리 친구란 말이죠.”
영근이가 테이블 위로, 손등을 위로 한 주먹을 내민다.
재인이는 얼떨결에 같이 손목을 들어 주먹을 맞춰 준다.
그러고 나서야 제 반응이 스스로 웃겼는지 크게 웃는다.
“오케, 그럼 한 잔 더 드시고~.”
영근이가 활짝 웃으며 잔을 채워준다. 역시 분위기 메이커다.
“우리 오늘 진짜 신나게 노는 거예요. 절대 빼기 없어요, 알았죠? 재인씨.”
“예.”
재인이가 짧게 대답한다.
“근데 나는 뭘해야 되는 거예요?”
이자까야를 나와, 영근이를 필두로 한 녀석들이 신나게 앞서간 뒤로 천천히 걸으면서,
재인이가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아저씨들하고 똑같이 놀다니. 그럼 나도 언니를 불러서 옆에다 앉혀?”
내가 그만 큰 소리로 웃어버린다. 앞에서 준후가 이쪽을 뒤돌아보는 게 보인다.
“왜, 재인이도 그런 취향이 있었어? 몰랐네.”
재인이는 놀림받았다 싶은지 입술을 빼죽 내민다.
표정이 어째 ‘그러지 뭐, 하라면 내가 못할 줄 알고?’ 하는 것 같다.
“자기는 나랑 앉아있으면 돼.”
내가 말한다.
“그리고 거기 언니들이 하는대로 따라해주면 돼. 나한테.”
“아.”
재인이는 뭔가 안심한 눈치다. 그 때 내가 정색을 한다.
“근데 재인아, 진짜 들어가서 분위기 망치면 안 돼.”
“응?”
“지난번에 섹스샵 갔을 때랑 마찬가지야.
자기가 무슨 동물원 온 것처럼 재잘대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던 것 기억하지? 그래서 우리 오래 못 있고 금방 나왔잖아.”
“응.”
“여기선 그러면 안 돼. 쟤들은 내 친구들이잖아. 비웃어도 안 되고, 평가해도 안 돼.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어도 안 되고.”
“구경만 해도 안 된다고? 그러면 어떡해야 되는데요?”
“생각해 봐. 너랑 내가 스킨십을 하는데 낯선 사람이, 아니면 내 친구들이 ‘와 쟤네 진짜 웃긴다! 저러는 게 되게 좋은가 봐!’ 해대면 어떻겠어?”
재인이가 생각에 잠긴다.
“아니면 막 평가질을 해. 우리의 뽀뽀 자세에 대해서,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지들끼리 막 해설을 해. 어떻겠어? 우리가 계속 뽀뽀를 할 수 있겠어?”
“못하죠. 근데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안 돼요?”
“뽀뽀하는데 누가 계속 뻔히 쳐다보고 있으면?”
“그건 그렇네.”
재인이가 끄덕인다.
“그럼 어떡해요? 무슨 말을 해도 안 되고, 가만 있어도 안 되면.”
“말했잖아. 똑같이 놀아줘.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다른 언니들처럼?”
“응. 다른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해주는 일을, 똑같이 나한테 해주면 되는 거야.”
“알았어요.”
“약속이다. 절대 빼면 안 돼? 자기가 부탁해서 나름 힘들게 마련한 자리라고. 알겠지?”
“안 뺄게요.”
말하면서 재인이가 내 팔짱을 낀다. 그녀의 체온이 평소보다 높다는 걸 나는 느낀다.
단지 술기운 이외의 무엇인가가 그녀에게 열을 더하고 있다.
“다 할게요. 하라는 대로.”
“형, 이쪽이야. 이리로 들어와!”
저 앞에서 영근이가 우리 쪽으로 크게 손짓한다.
나는 속으로 웃는다.
저 간판, 저 건물, 제법 오래 전이지만 아는 여기 와 본 적이 있다.
필시 영근이일 텐데, 저곳을 고른 녀석의 센스를 인정해준다.
그곳은 룸살롱이 아니라, 소위 북창동식 풀살롱이었다.
재인이를 업소에 데려가기로 했을 때, 사실 걱정했었다.
우리끼리 모든 걸 다 합의하고 결정한다고 해도,
정작 업소에서 안 받아주면 어쩌지? 업소는 당연히,
여성 대상의 업소가 아닌 다음에야 남자들끼리 가는 것이지
남녀 혼성으로 그런 곳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입구에서 막지 않을까? 웨이터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업소 언니들이 여자가 낀 멤버들한테는 서비스하는 걸 거부하지 않을까?
“뭘 그런 걱정을 해? 돈 준다는데! 걔들은 무조건 맞춰주는 거야. 그게 걔네들 일이니까.”
영근이가 코웃음을 쳤었다.
정말 그래서 그런지
가게로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생각보다 어색하지도 않았다.
업장은 꽤 컸고, 왁자지껄했으며, 미리 전화를 받은 웨이터가 불필요하게 큰 목소리와 제스처로 우리를 환영했다.
손님이 많은 시각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적어도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재인이가 이런 곳에 왔다갔다하는 여자들의 복장과는 딴판으로
캐주얼한(그리고 흔해빠진)여대생 차림인데도 그랬다.
나는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 가학적이면서 동시에 피학적인 기대를 가졌었는데,
그런 내가 은근히 서운해질 지경이었다.
단지 웨이터가 재인이를 자꾸만 곁눈질하는 건 분명했다.
영근이가 예약 전화를 하면서 그녀 이야기를 미리 해뒀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웨이터는 우리들 하나하나한테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는 척을 하면서,
재인이는 마치 거기 없는 사람인 양 눈을 맞추지 않았다. 눈을 맞추지 않으면서 틈만 나면 곁눈질로 흘끔거렸다.
재인이도 평소 성격대로라면 그런 식으로 곁눈질해대는 사람을 하다못해 빤히 노려보기라도 했을 텐데,
장소가 장소여선지 눈을 내리깔고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올 뿐이었다.
마치 어른들 틈에 낀 어린아이나, 애완동물처럼.
웨이터가 우리를 룸으로 안내했다.
재인이는 나중에 ‘오빠한테 들은 거로는 되게 음침하고 허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화려하고, 비싼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고 해서 깜짝 놀랐어.’라 했다.
테이블에 깔끔하게 세팅된 술잔, 음료수 잔, 생수병과 음료수병들 등에도 놀라는 눈치였다.
재인이의 얼굴이 처음 보는 유원지나 야시장에 들어온 어린아이와 비슷해졌다.
반짝대는 눈으로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훑어댄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깍지를 낀다.
술이 세팅된다. 술을 가져온 녀석은 재인이를 흘끔대는 정도가 한층 심하다.
바깥의 왁자지껄한 곳에서와는 달리 밀폐된 공간에서는 재인이의 존재와
그녀를 향한 시선들이 더 원색적으로 드러난다.
그나마 술을 제법들 먹고 온 게 다행이다.
“참 여기 양주는 먹지 마요, 재인씨.”
태민이가 말했다.
“예?”
“좋은 술이 아니에요. 다음날 속이 많이 안 좋을 수 있으니까, 재인씨는 여기 양주 먹지 마요, 알겠죠?”
“응, 맞다. 그렇게 해, 재인아.”
그리고 한참 뒤에 여자들이 들어온다.
이제부터는 아무래도 어색함을 피할 수가 없다.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온 웨이터가 아무리 너스레를 떨어대어도
재인이는 여자들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고
여자들은 ‘쟤 뭐야?’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저렇게 들어온 언니들 중에 한 명씩 파트너를 고르는 거야.”
내 말은 사실 불필요한 설명이었다.
그냥 말이란 것을 하기 위한 말일 뿐이다. 재인이는 고개만 끄덕인다.
“이거 원래는 형 먼저 초이스해야 되는 건데.”
영근이가 나를 향해 말했다.
“야 나는 오늘 파트너가 벌써 있잖아.”
그러면서 과장스럽게 재인이의 어깨를 껴안는다.
그리고 쓰다듬는다. 그녀의 몸을 다시 데우듯이 말이다.
“그럼 내가 먼저.”
초이스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난다.
내가 출입을 안 한 몇 년 사이 여기 분위기나 친구들 취향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예전 기억에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다고 두 세 그룹씩 빠꾸를 놓는 게 보통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또 우연인지는 몰라도 선택되어 자리로 들어온 여자들이
다들 녀석들 취향대로
예쁘다기보다는 세 보이고 색기가 흐르는 한마디로 잘 놀 것 같은 언니들이다.
“오늘 확실하게 놀아줄 거지? 이거 보통 자리 아니야!”
‘보통 자리 아니다’라는 말에 여자들의 시선이 왠지 재인이 쪽을 향하는 것 같다.
“염려 마요. 오빠들 오늘 다 죽여 줄게.”
영근이 옆에 앉은, 오늘 제일 먼저 초이스된 여자가 목소리로 말한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길고 가느다란 눈, 작은 키에 육덕진 몸매의 언니다.
좀 쉰 듯한 목소리가 저절로 방안에 다 울리는 성량이다.
“네가? 여기 우리들을 다?”
태민이가 웃는다. 벌써부터 제 옆의 여자 어깨를 살살 만지면서.
“원하신다면요, 우선 (영근이 어깨를 치면서)이 오빠부터 죽여 놓고.”
“기대되네. 아니 아니, 내가 뭐래냐. 무섭네, 이 언니.”
영근이가 너스레를 떤다. 모두들, 실제 나오는 웃음보다 조금 더 크게 웃는다.
“그러려면 먼저들 좀 벗으셔야 되는데.”
허스키한 목소리의 언니가 말한다.
“아 우선 벗고 시작하는 거야?”
“당연하지 오빠.”
허스키 언니가 말한다.
나이는 많지 않아 보이는데 아무래도 자리를 주도하는 스타일인가보다.
영근이랑 죽이 잘 맞게 생겼다.
“팬티 하나씩만 남기고 다 벗어주세용.”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안 그런 척 재인이 쪽을 향한다. 재인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모른 척, 오케이! 호기롭게 외치며 웃통을 벗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