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촤악- "으아악!! 헉, 헉..." 어두컴컴한 지하실의 습한 기운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다. 그 안에 누군가의 몸뚱아리인 듯한 고기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건장한 남정네 둘. 몇 시간 전부터 물었던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 "마혁진은 어디 있나?" "모.. 모른다.... 헉..헉...."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거로군.." 말이 끝나기와 동시에 채찍을 들고 있는 손이 올라간다. 그리고.. 촤악- 촥- "으아악!!! 으악!!"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음소리가 사라졌다. "기절한 것 같은데요. 어떡할까요? 깨울까요??" "아니, 잠시 그대로 놔 둬."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꽉 닫혀 있던 지하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오는 한 남자는 이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장차림이었다. "형님!"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리던 두 남자가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났다. 그리고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하지만 형님이라 불린 남자는 그 둘을 힐끗 바라보고는, 축 늘어진, 아까까지 고문을 당하고 있던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린다. 방금 전까지 당할대로 당했기 때문에 몸 여기 저기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피부는 스며 나온 피의 붉음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듯한 하얀 피부였다. 그리고 땀에 젖은 갈색 머리칼이 지하실을 비춰주는 단 하나의 전등으로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정말 찔긴 놈입니다요."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떼는데, 아직 채찍맛을 덜 본 거겠지요. 금방 알아내겠습니다." "야, 깨워!!" "아니, 그만 됐다. 손목 좀 풀러봐라." "예?? 형님, 저 새끼, 놓아줄 겁니까?" "풀러주라고 했지, 놓아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말에 꼬치꼬치 말대답하지마." "예....." "그리고 저 자식 내 방에 갖다 놔. 다친 데 약도 발라주고." "예...........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잠깐 나갔다 올테니, 내 말대로 해 놔." 그리고 지하실을 나갔다. #2 "으윽...." 온 몸에서 퍼져나가는 아픔으로 눈을 떴다. 순간 환한 빛 때문에 잠시 눈을 깜박거려야 했다. 지하실이........ 아니다....???? 잠시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어느 정도 빛이 눈에 익자 주위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화스런 방이었다. 자신은 평생동안 꿈도 꾸지 못하는 그런 방이었다. 난 분명히 호피테스에 잡혀왔는데......???? 어찌되었든, 파악은 난중에 하고 나가자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으윽.."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소리지르는 상처 때문에 다시 자리에 누워야 했다.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봐도 무지무지 화려한, 하지만 여전히 낯선 방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해본다. 역시 지하실에서의 기억이 마지막 기억이다.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눈만 깜박거리면서 머리를 굴려보지만 여전히 자신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방을 들어온 자를 보고는 모든 사고회로가 멈춰버렸다. 문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는..... 바로..... 최.현.석. 아까 형님이라고 불리운 사람이었다. "이, 이 새끼...!!" 순간 놀라움과 분노로 몸이 아픈 건 생각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 여기저기가 쑤셔 왔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아, 아직 움직이는 건 무리일텐데..??" 비꼬는 듯한 그의 말투에 열을 받았지만, 지금 자신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한 상태였다. "아님, 분해서 그러는 건가..? 천하의 카닐라 짱이었던 마혁진 오른팔인 주태민이 생긴지도 얼마 되지 않은 호피테스의 최현석에게 붙잡혔다는 사실이..??" 또각또각 다가서는 현석의 구두소리가 태민의 귀에 너무도 거슬렸다. 하지만 태민은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그냥 그런 현석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한 발자국만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퍼억- 쿵-! 어느새 다가온 현석이 미동도 못하고 있는 태민의 복부를 때리자 태민은 그대로 침대위로 다시 쓰러졌다. 침대의 반동으로 몸이 움직이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래서 태민은 자신의 위로 그대로 덮쳐오는 현석을 막을 수 없었다. "끄으윽...." 배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오는 듯한 신음소리에 현석은 만족한 듯 했다. "지하실에서 내 방으로 널 데리고 온 건 별다른 뜻은 없어. 널 좀 적응시키기 위해서일 뿐 이야. 이제 넌 널 위해 살지도, 물론 마혁진 그 자식을 위해 살지도 못하게 될 거다. 네 몸은 이제 더 이상 너의 것이 아니니까. 네 몸은 이제부터 내 것이 될 것이다...." "미친 새끼.. 니 뜻대로 될 줄 아냐... 내가 널 위해서 산다고..?? 헛소리 집어쳐!!! 그런 날은 죽어도 오지 않을 거다. 지구라도 종말해야지 오게 될지도... 더러운 몸뚱아리나 치우시지!! 역겨우니까.." "그래? 그럼, 니가 밀쳐봐라." "뭐어-??? 이 새끼가 죽고..... 흐읍...." 현석은 태민의 입술을 그대로 덮쳤다. 놀란듯한 태민의 눈동자는 점점 커지고. 태민은 벗어나려 발버둥쳤으나, 지금의 상태로는 불가항적이었다. 오히려 미약한 태민의 저항은 현석을 더욱 흥분시킬 뿐이었다. #3 "허억.. 헉... 비, 비켜. 이 개새끼야..." "이런, 능숙하게 키스를 받아들이고 한다는 소리가 고작 비키라는 소리냐?? 주태민도 한물 갔군... 킥."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 속은 이리저리 뒤엉키고 있었다. 날 가지고 장난하는 건가..??? 기분 정말 엿같군... "비키라고!! 이 새끼야!!! 귀 처먹었냐???" "말이 참 험악하군.. 그 말버릇부터 고쳐야 겠는걸... 할 수 있음 니가 한번 밀쳐 보라고 했 잖아? 왜그래?? 천하의 주태민이 한낱 신생 서클인 호피테스 이인자한테 깔려서 소리치는 모습, 정말 볼만하군.. 킥킥..." "이, 이 새끼가!!" 어디서 나온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태민은 있는 힘을 다해 현석을 밀쳤다. 순간 당한 일이라 현석은 태민의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태민은 현석의 방에서 도망칠 기운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밀쳐낸 것일 뿐이었다. 아픈 몸을 추스르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톡 떨어졌다. 현석은 일어나 그런 태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는 무서워하는 것이 있나? 인간에게 공포란 복종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거 아 나..?? 특히나 너처럼 자존심이 강한 아이를 상대하려면 확실한 공포를 심어두는 것도 하나 의 방법이 되지.. 뭐가 좋을까..... 흐음.... 아!! 그래... 넌 어둠을 무서워하나..?? 아, 뭐, 지금 은 무서워 하지 않아도 돼.. 이제부턴 어둠이 너의 공포가 될테니까..."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현석은 문 쪽으로 걸어갔다. 태민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나가는 듯 싶더니.. 현석은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껐다.. 어둡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거지...??? 또 다시 들리는 현석의 구두소리..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뭔가 모를 두려움이 태민의 몸을 지배했다. 움직일 수 없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귀에 거슬리던 구두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태민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놀랬다. 아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다시 한번 태민의 고개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어느 정도 어둠이 눈에 익자 다시 손을 올리는 현석이 보였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내리치려는 손을 잡았다. 하지만 바로 그런 태민의 팔을 꺾는 현석.. "으윽.."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직 지하실에서의 고문이 다 낫지 않은 상황에서, 팔이 그에게 잡혀 뒤로 꺾여 있는 상황에서, 태민은 손 쓸 방도가 없었다.. "이런 몸으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우습군... 저항하지 마라. 적응시키고 있 는 거다." "네 까짓 것한테 내가 왜 적응을 해야하는 거지...???" "아직도 입은 살아있나 보군.. 킥킥.. 그래, 그래.. 그래야 주태민같지...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잠 못 잘 각오는 해야할걸..." "뭐???!!!" 말을 마치고 바로 태민의 위에 올라타는 현석. "비켜! 이 새꺄!!!"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태민의 옷을 찢어버린다. 원래의 그의 옷은 지하실에서 다 찢어진 상태였기에, 현석의 명령대로 그의 방에 태민을 데려놓으면서 그냥 대강 걸쳐놓은 듯 한 옷이었다. 금방 찢겨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의 조각이 현석의 손에서 팔랑거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태민이었다. 잠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가 뭔가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뭐야.. 벌써 흥분하는 거야...??" "비키라니까!!" 현석을 밀쳐내려고 해도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석은 자신의 아래서 아둥바둥 발버둥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 얼굴을 그의 목덜미에 묻었다. "뭐, 뭐하는 짓이.... 흐억..." 살살 그의 목 주변을 애무하는 현석의 혀에 태민은 어쩔줄 몰랐다..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것이라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이.. 이 변태...헉....... 새..끼......." 현석은 태민의 목 주변을 천천히 애무하다 쇄골을 지나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러면서 그의 손은 태민의 바지를 벗기고 있었다. #4 "그, 그만. 그만.... 허억...그...만......해..........흐윽....." 깜깜한 방 안에서 태민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신음소리만 벽에 반사되어 자신의 귀로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할짝 할짝 태민의 유두를 핥던 현석이 그것을 살짝 깨물었다. 태민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허리가 휘었다. 그러다 유두를 놓친 현석은 바로 태민의 허벅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 그만... 으흑..." 태민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없다. 현석이 주는 쾌락 비슷한 것과 여전히 온 몸에서 퍼져가는 아픔 속에서 갈팡질팡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태민의 몸은 현석의 애무에 하나하나 반응해주고 있었다. 현석의 애무가 점점 거칠어져갔다. 현석이 태민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태민의 것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오므리는 태민의 두 다리를 손으로 붙잡고 태민의 것을 놓아주지 않았다. 태민의 최고 성감대인 그것이 점점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쾌락을 방출하려는 순간, 현석은 그것을 입에서 빼내 손으로 꽉 쥐었다. 순간 방출되지 못한 쾌락들이 태민의 온 몸에서 날뛰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 그만... 제발....흐윽..흑.....그...만.............." 언제부터인가 태민은 현석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석의 손은 그것을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욱 압박을 가하며 태민의 몸을 뒤집었다. 등의 패인 곳을 따라 애무하기 시작했다. 고통이었다. 자신의 것이 막혀있는 상황에서의 애무는 더 이상 쾌락도 주지 않은 단순한, 고통만을 주기 위한 행위인 것이다. 엉덩이 바로 위의 움푹 파인 곳에 손이 닿자, 태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성감대인 듯했다. 천천히 현석이 그곳을 애무했다. 태민의 허리가 조금씩 휘어졌다. 태민의 신음소리와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 찬 어두운 방이었다. "원래 처음에 길을 잘 들여야 한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나..? 처음에 길을 잘못 들이면 두 고두고 고생을 하지.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현석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는 태민이었다. 하지만 현석의 말이 끝나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으악~!!!!!" 눈 앞이 하얘졌다. 머리 속이 백지화되어갔다. 허리에서 시작된 고통이 척추를 따라 바로 뇌에 직격하는 듯 했다. 뒤에서의 압박과 앞에서의 압박이 엇박이 되어 태민을 더욱 힘들게했다. 손마디가 하얘지도록 시트를 잡았다. 아무런 패팅이 없는 섹스였다. 처음인 태민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으윽.." 어금니가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내 이름을 불러봐." "미...미친... 새.....끼............ 으, 으악!!!!" 지금 자신이 느끼는 고통이 정말 현실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난 지금 너무나 현실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너무나 재수없는 꿈을 꾸는 건 아닌가.. "내 이름을 부르면 좀 편안하게 해주지.. 내 이름을 불러봐......." 천천히 상하운동을 하며 현석이 말했다. 점점 죄여오는 페니스의 압박과 점점 깊게 파고드는 뒤에서의 압박이 더 이상 태민이 깨어있을 수 있게 하지 않았다. 현석의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내이름을불러봐 내이름을불러봐 내이름을불러봐...... 제발 그만.. 제발 그만해.... 그만........... "............그...................만.................................." "...제발.........그......만..................혀....ㄴ.......석..............." 태민은 자신의 몸 속에서 날뛰고 있던 쾌락이 방출되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정신을 놓고야 말았다.. #5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둠속이었다. 뭔가 이상한 것이 눈을 가리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손목은 묶여 매달려있었다. 또 지하실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매달린 것도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어중간하게 서있는 모습이었다. 제대로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발꿈치를 약간 든 그런 어정쩡한 상태였다. 조금 몸을 움직일때마다 허리에서 시작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다리에 힘을 주어 서있자니 허리가 아프고, 다리에 힘을 주지 말자니 묶인 손목이 아팠다. 손목이 끈이 아닌 무슨 철제물로 묶인 것 같았다. 철컥-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굴까.. 현석..?? 아님, 그 때 그 두 놈...??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를 지금의 상황이 태민에겐 너무나 답답했다. "안대를 풀러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빛 때문에 태민은 몇 번 눈을 깜박였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실이 아닌 여전히 화려한 현석의 방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았다. 아무것도 안 입혀진 상태로 수갑이 채워져 이상한 고리에 걸려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안대를 풀러준 사람을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까.. 존칭어를 썼는데......?? 누구지....??? "저는 서유빈이라고 합니다. 현석님의 보좌관이자 태민님을 보살펴 주게 되었습니다." "서.. 유빈.........?" 그의 이름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허리의 고통 때문에 아무런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태민에게 유빈은 말 을 이었다. "옷을 먼저 입혀드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옷을 가져와 입혀주는 유빈에게 태민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자신의 적인 호피테스의 인물인데....?? "으윽.." 참으려 했으나 절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있는 자세가 태민에겐 너무 힘이 들었다.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도 입을 수 있는 특별제작된 희고 반투명한 옷을 유빈은 태민에게 조심스레 입혔다. 손목이 너무 아팠다. 이미 수갑이 채워진 손목은 빨갛게 부은 상태였다. 하지만 다리에 힘을 줄 수 없는 지금의 상태에선 어찌할 수 없었다. "수갑은 열쇠를 현석님께서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따뜻한 말 때문일까.. 아님, 자신을 바라보고 가만히 미소 짓는 얼굴 때문일까... 태민은 적인 그에게 이미 마음을 적지 않게 주고 있었다. 이때까지 자신이 만난 호피테스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호피테스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태민은 그의 앞에서 자신이 흘리는 눈물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뭐가 서러운 건지. 눈물이 나올 만큼 슬픈건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나왔다. 유빈은 그런 태민을 가만히 놔두었다. 아름다우신 분이다. 현석님께서 갖고 싶어할 만한 존재이군.. 유빈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선 자신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조차 없는 태민이었다. 유빈은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태민의 눈물에 젖은 맑은 눈동자가 유빈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따뜻한 자가 현석이었으면... 어제의 일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태민이었다. 허리에서 간간히 전해지는 고통이 어제 일은 꿈이 아니라는 슬픈 진실을 전해주고 있었다. 솔직히 어제 정신을 잃으면서 영원히 눈을 뜨지 않았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악몽 같은 현실을 18살의 어린 태민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끔찍했던 지하실에서의 고문에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태민이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이건.. 경우가 달랐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더러운 창녀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미 눈을 뜬 이상 오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난 이제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아침, 드셔야 합니다. 제가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몇 시야.....?" "10시입니다." "그 새끼는 언제 나갔어?" "8시에 일어나셔서 씻고 나가셨습니다. 오늘 늦게 들어오신다고...." 자신의 상관을 새끼라 불렀음에도 유빈은 태민의 질문에 순순히 답했다. "아침 갖고 오겠습니다." "생각없어." "그래도 드셔야 합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너 같으면 이 꼴로 밥이 넘어갈거 같애?" 현석 때문에 갑자기 신경이 날카로워진 태민이었다. 그럴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말이 험악하게 나왔다. 하지만 유빈은 들은 척 만 척 그냥 방을 나갔다. #6 안 먹겠다고 버티는 태민에게 협박도 하고, 애원도 하고, 호소도 하면서 유빈은 결국엔 미음 한 그릇을 비우게 했다. 마음을 열 곳이 필요했던 태민에게 유빈은 금방 유일무이한 친구가 되었다. 몇 시간밖에 있지 않았으나 그 둘은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존칭어는 카닐라에서도 이인자로서 항상 듣던 것이었기에 태민은 금세 그의 말투에 익숙해 졌다.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저녁을 먹은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았다. 바깥은 볼 수 없지만 분명히 많이 어두워졌으리라.. 몇 시냐고 묻는 태민에게 유빈은 시계를 봤다. 저녁이 아니라 벌써 밤이었다. 11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벌써 그렇게 된거야..??" "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빈의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네.." "나다.. 지금 들어가니까 준비해놔." 현석이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탈칵- "누구야?" 태민은 유빈의 딱딱히 굳은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들어오신답니다." 유빈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만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태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금세 눈에 두려움이 가득 찼다. "지금... 들어온다고........?" "네.. 그러니.......태민님............께서도 준비를 하셔야....." "싫.....싫어...... 싫엇!!!" 태민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수갑에서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손목은 빠지기는커녕 빨갛게 부풀어오르기만 했다. "싫어............ 싫어.......... 으흑... 싫단.......말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늘은 도대체 몇 번 우는 건지... "........태민...님.........." "유빈... 흑... 나 좀 풀어줘....... 제발....... 뭐든지 할테니까 제발 이것 좀 풀어줘.... 흐흑....." 유빈으로선 어쩔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민은 유빈에게 사정했다. 또 다시 악몽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또 다시 공포가 자신의 몸을 지배하는 걸 느꼈다. "제겐... 열쇠가 없습니다........" "으흑.... 가! 가버려!!! 가버리라구!!!! 흐흑...흑...." 유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태민에게 다가와 가만히 안아주었다. 역시 아직 태민은 18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었다. 자신의 가슴속에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그가 느껴졌다. "싫어... 가란말야..... 흐흑... 가라구........." "울지 마십시오.." 유빈은 태민의 눈물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가 울음을 어느 정도 그칠 때까지 안아주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사그라들자 유빈은 그를 내려다 보았다. 너무 맑았던 그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은 채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현석이 돌아오기 전에 준비를 해 놓아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태민에게 안대를 씌우는 것밖에는 없지만.. "내일 또 오겠습니다." 자신에게 안대를 다시 씌우는 유빈을 태민은 계속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 어둠 속에서 자신을 포근히 감싸안아 주는 유빈의 손길이 느껴졌다. 자신을 떼어놓고 유빈이 나가는 듯했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철컥, 하는 문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울지 말아야 했다. 지금 울면 유빈이 아닌, 현석에게 들키게 된다. 그건 죽기보다 싫었다. 태민은 심호흡을 했다. 두려움을 떨쳐내야 했다. 그의 앞에서 벌벌 떨고있는 자신의 모습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답답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7 얼마나 흘렀을까.. 철컥- 문소리가 들렸다. 태민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것은 없지만.. 하지만 누가 들어왔는지는 알았다. 어제와 다름없는 구두소리였다.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아님 보고 있지 않은지조차 알 수 없 어 답답했다. 현석은 안대를 하고 고개를 숙인 채 매달려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몸이 보였다. 언뜻언뜻 비치는 피부에는 어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한 손목은 빨갛게 부어있었다. 현석은 태민에게 걸어갔다. 또각. 또각. 점점 가까워지는 구두소리로 태민은 현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손이 묶여 있는 이상 막을 수 없다. 이미 안대를 한 상태이지만 태민은 눈을 꼭 감았다. 구두 소리가 그쳤다. 차가운 밖에서 막 들어와서인지 태민의 앞에 선 현석의 몸에선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미세하게 떨리는 몸은 이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다. "고개 들어." 현석의 차가운 저음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태민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침을 뱉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었다. 그가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 했다. 그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속상했다. 현석은 비록 침을 맞지는 않았지만 순간 이성으로 절제하고 있던 감정이 폭발했다. 짜악- 태민의 고개가 돌아갔다. "원위치시켜." 태민은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오기로 얼굴를 원위치시켰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다시 현석의 손이 올라갔다. 짜악- 태민의 얼굴이 반대편으로 꺾였다. "원위치." 짜악- 태민의 하얀 얼굴은 금세 빨갛게 부어올랐다.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거 같구나. 어제 그렇게 당하고도 그런 힘이 남아있나...?" "미친 새끼... 그럼 내가 울고 빌고 하는 걸 상상한거냐..?? 어떡하냐.. 그런 일은 절대로 없 을테니까... 혹여나 그런 걸 바라고 있는 거면 일찌감치 포기해라. 니 놈의 새끼가 무슨 짓거 리를 해도 그런 일은 없을테니까.." 역시 말이 곱게 나가진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말을 하는 것밖에 없기에 자신이 이때까지 들어온 욕이란 욕은 전부다 퍼부어 주었다. "그래.. 그 잘난 주태민의 자존심이 여기서 꺾이면 말이 안 되지. 그러는 편이 나도 즐겁고 말야... 킥.." 찌익- 뭔가가 찢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태민은 자신의 몸이 휑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는 옷이 남아도나... 맨날 찢어버리게....... 또 다시 어제의 악몽이 시작되려 한다. 그냥 당하면 나, 주태민이 아니지.. "야, 이 새끼야!! 무슨 짓이야!!!" 그냥 되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그가 어디에 서있든 그냥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소리지르는 편이 나았다. 현석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얀 피부에 울긋불긋한 자국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휘익- 뭔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촤악- "아악!!" 채찍이었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맨 몸으로 맞는 채찍질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휘익- 휘익- 하는 바람가르는 소리와 바로 직접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현석의 채찍질은 매서웠다. 기술적으로 맞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 채찍질을 가하는 것 같았다. 엄청난 아픔이었으나,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하는 태민이었다. 그냥 여기서 기절을 하면 어제와 같은 일은 없을 것 같았으나,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도 다시 가해지는 채찍 때문에 다시 정신이 들곤 했다. 어디서 채찍이 날아오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8 순간 조용해졌다. 태민의 거친 호흡소리만 들렸다. 현석은 숨을 내뱉고 있는 태민을 바라보았다. 꽤 오랫동안의 채찍질로 여기저기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현석은 태민에게 다가가 손으로 찢어진 상처를 문질렀다. "으윽.." 거친 손길에 태민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잠시 멈춰진 채찍질에 태민은 한 숨 돌릴 수 있었으나, 현석의 손길에 다시 눈물을 글썽였 다. "흐윽.." 뭔가 차가운 것이 몸에 닿자 태민은 흠칫거렸다. 현석의 혀인 듯 했다. 태민은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태민은 그대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석은 태민을 뒤로 돌려 그대로 들어갔다. "아아악!!!" 여전히 아무런 배려없는 침입이었다. 어제 침대에서 했던 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서서 하는 섹스가 있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으윽..." 꽉 다문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시각이 차단된 지금, 태민의 세계에서는 현석이 주는 압박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눈이라도 보이면... 무언가라도 보이면... 안 보인다는 사실이 지금만큼 짜증나고 답답한 적은 없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온 정신이 그곳에 집중되었다. 현석은 상하운동을 시작했다. 조금 빼냈다가 더욱 깊게 들어가는 일을 계속 했다. 태민의 몸이 고통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현석은 그런 태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깊숙이 들어갔다. 꼭 현석의 페니스가 자신의 창자에까지 닿은 것처럼 태민은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무언가 자신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현석의 정액이라 생각한 태민은 순간 기분이 더러워졌다. "변..태......새끼......... 으윽.." 입안에 비릿한 피맛이 났다.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었나보다. 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더러운 기분을 맛보면서 태민은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축 늘어지는 태민을 보고 현석은 자신의 몸을 빼냈다. 태민의 다리로 흘러내리는 피.. 하혈이었다....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줄 생각은 하지 않고 현석은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냈다. 현석의 눈에는 피보다도 빨갛게 부은 손목이 거슬렸다. 내일 하루는 침대에 눕혀놔야겠군.. 이렇게 또다른 하루가 지나간다. 이렇게 또다른 밤이 지나간다. #9 흠칫. 다리 사이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닿는 듯한 느낌에 태민은 정신이 들었다. 여전히 안대가 씌어져 있었다. 누군가 차가운 수건 같은 것으로 다리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침대에 눕혀져 있는 듯 했다. 손목은 여전히 수갑에 채워져 침대 머리맡의 기둥(?)에 고정되어져 있었다. 물수건이 지나는 자리가 워낙에 예민한 곳이라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엉덩이부터 시작해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까지 꼼꼼하게 닦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태민은 닦아주고 있는 것이 어젯밤의 흔적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매우 나빠졌다. 이틀간의 연속된 무리한 섹스 때문에 태민의 몸은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몸은 약간만 움직이려 해도 순간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으윽." "잠깐만 가만히 계십시오. 닦아드리고나서 안대를 풀러드리겠습니다." 유빈이었다. 어젯밤 계속 안대가 씌어져 있었으면, 태민은 자신이 지금 닦아내고 있는 것이 피라는 것 을 모를 것이다.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대를 풀지 않고 먼저 닦아주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엔 현석님께서 꽤 심하게 다룬 것 같았다. 아침에 들어와 무척 놀랐다. 온 몸에 난 상처뿐만 아니라 입술과 다리에는 피가 흐르다 굳어있었다. 현석님께서는 조금 무뚝뚝하고 차가운 분이지만 이렇게 혹독한 분은 아닌데... "유빈이었구나." "네.." "나... 더럽지......???" "네....?" "하긴.. 남자애가 남자한테 당한 꼴이라니.. 정말 꼴불견이군.." "아, 아니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유빈은 대답하며 태민의 안대를 풀어주었다. 태민의 맑은 눈동자가 유빈을 슬프게 바라보고 있었다. 유빈은 고개를 돌리며 아침을 가져 온다고 했다. 유빈이 나간 사이, 태민은 자신의 상태를 둘러보았다. 어제 맞은 자국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나마 침대에 누워 있어, 손목이 아픈 것은 덜했지만, 그보다 허리는 어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허리로부터 시작되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태민은 아무런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태민은 유빈이 떠주는 미음을 누운채로 그대로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피곤하시면 더 주무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아니, 괜찮아. 조금 움직이는게 힘들뿐이야." 유빈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태민이 심히 걱정스러웠다. 허리가 너무 아파 옷도 입지 못하고 얇은 이불을 덮은 채였다. 약을 사서 여기 저기 발라주기는 했지만 꽤 오래갈 상처들이었다. "유빈은 여길 어떻게 왔어?" "네...?" "여기에 왜 발을 들여놓은 거야?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풋. 그러는 태민님은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까? 오히려 태민님이 안 어울리시는데요." "……" "저는..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어머니는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점점 쌓여가는 빚더미에서 절 구해주신 분이 현석님이었습니다. 절 받아주셨을뿐더러 어머니 치 료비까지 대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은인이라고나 할까요..? 그게 인연이 되어 이렇게 현석님 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전혀 안 믿기는 군. 그 새끼한테 그런 면이 있단 말야?" "원래 착하신 분입니다." "너같으면 이 꼴로 만든 그 놈이 착하다는 말을 믿겠냐?"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뿐이십니다." "쳇, 그 놈의 관심, 두 번 표현했다간 사람 하나 잡겠네." "태민님께는 왜 그러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싫어하시는 건 아닙니다." "아~ 됐어, 됐어. 그 놈 칭찬하는 거 듣고 싶지 않아." "예..... 아, 점심 드실 시간입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가지고 오겠습니다." #10 "예..... 아, 점심 드실 시간입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가지고 오겠습니다." "뭐야, 벌써 점심시간이야?" 유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석님은 너무나 착했고, 너무나 상냥했다. 물론 일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칼같았지만, 인간으로서는 뭐 하나 흠잡을 곳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태민님에게만.......?? 유빈은 준비되어 있는 점심을 가지고 방으로 가면서 줄곧 그 생각을 했다. 방에 막 들어갈려는 찰라, 유빈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 들고 있던 걸 놔두고, 유빈은 폰을 받았다. "네." "나다." "현석님..?? 이 시간에 왠일로..??" "지금 태민이랑 나와라." "예.....??" "지금 그 놈이랑 나오라고." "지금...요....??" "응, 바로 지금." "아직 식사도 하지 않았는데.." "아직...? 벌써 2신데 점심도 안 먹었단 말야?? 내가 밥은 제때제때 챙겨먹으랬잖아." 이렇게 다정한 분인데... "그럼. 3시까지 옷집으로 와." "저기...." "또 뭐야...??!!!" "제겐... 열쇠가 없습니다." "아~ 그거? 그거 옆에 서랍장 서랍 안에 내가 오늘 아침에 넣어놨어. 찾아봐." "예... 근데...." "또 있어...???!!!!" "저기.....태민님께서 도저히 움직이질 못하시는데요.....?" "3시까지 가게로 와. 기다릴테니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끊는다... 아!! 그리고 안대!! 잊지마!!!" "예...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탈칵- 끊어져 버린 폰을 계속 바라보았다. 항상 날 걱정해주시는 정말 다정하신 분인데... 유빈은 미동도 하지 못하는 태민을 어떻게 밖으로 데려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어떻게 현석님에게 데려가야 할지 막막했다. "밥을 무슨 공장에서 지어왔어? 뭐 그렇게 오래 걸려?" "아, 아닙니다." 유빈은 태민옆에 다가가 쪼그려 앉아서 미음을 한 숟갈씩 입에 떠 넣어주었다. 어제와는 달리 고분고분 잘 받아 먹는 태민이었다. 어느새 한 그릇이 비워지고, 시계는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젠 준비를 해야한다.. 아까부터 아무 말이 없는 유빈을 이상스레 바라보다가 태민은 그의 손이 안대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순간 얼었다. 한때는 카닐라의 제2인자라 불렸던 태민인지라 그러한 유빈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아차릴 수 있었다. "....안..대는......왜..........??" "밖에 좀 나갔다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밖에..?? 지금 도저히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데...??" "예......" "근데...? 안대는......?? 어딜 가려는 건데......???" "가보시면 압니다." "나, 정말 움직일 수 없다니까!! 그리고!! 이 수갑은??!! 너 열쇠 없다며!!" 발악을 하는 태민을 신경쓰지 않고 유빈은 안대를 씌웠다. "서유빈!! 으윽." "잠시만 참으십시오.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새끼가 나오라는 거야??!!! 그거 정말 미친거 아냐!! 지가 날 이 꼴로 만들어 놓곤 움 직일 수도 없게 해놓곤 알아서 나오라는 거야??!!!!" 유빈은 서랍안에 놓여져 있는 열쇠로 수갑을 풀러서는 다시 태민의 등 뒤로 채웠다. 앞으로 채우면 안대를 벗을 우려가 있기때문이었다. 현석에게 안대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석이 하라는 것이기에 유빈은 무조건 따라야 했다. #11 유빈은 서랍안에 놓여져 있는 열쇠로 수갑을 풀러서는 다시 태민의 등 뒤로 채웠다. 앞으로 채우면 안대를 벗을 우려가 있기때문이었다. 현석에게 안대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석이 하라는 것이기에 유빈은 무조건 따라야 했다. "나.. 정말 아프단 말야......."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 태민.. 유빈은 그런 태민이 안쓰러웠지만 태민에게 옷을 입힌 후, 안아서 밖으로 나갔다.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리에 힘을 전혀 줄 수 없는 태민을 위해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게 했으나,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태민은 괴로워했다. 우여곡절 끝에 차에 태민을 태우고 현석이 기다리고 있을 가게로 출발했다. 그리고 태민은 가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가 멈추자 태민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안대가 씌워져 있었지만 무엇이 보인다는 듯 고개를 돌려보는 태민이었다. 유빈은 먼저 내려 태민을 부축해주었다. 차에 탈때는 안아주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가게 안에는 현석이 있다. 부축이래봤자 태민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다리가 질질 끌려오는 상태였다. 도저히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차 소리도 들리고 사람소리도 들리고.. 길거리임에는 틀림없다.. 길거리에서 한 남자가 반 죽음이 된 상태의 사람을 질질 끌고간다는 것이 무슨 쇼인 것 같 아 씁쓸한 미소를 짓고야 마는 태민이었다. "유빈, 물러서." 흠칫. 현석의 목소리였다. 유빈이, 그리고 유빈에게 끌려오던 태민이 자리에 멈춰섰다. "지 발로는 걸어올 수 없나보지..? 킥. 주태민이 다른 사내에게 질질 끌려오는 모습이라니.. 오래 살고 볼일이군." "현.. 석님.....??" 이런 모습의 현석을 이때까지 모셔오면서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잠시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하던 유빈이었다. "유빈, 그 자식을 내려놔." 순간 부르르 떨리는 태민의 몸이 느껴졌다. "하지만, 현석님.. 태민님께서는... 지금 움직이시지....." "내려놓으라고." 유빈은 어쩔 줄 몰라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말대로해...." 조용히 속삭이는 태민의 목소리. 하지만 이대로 태민을 놓으면 태민은 쓰러진다. "비켜... 유빈......" "하지만!! 태민님!!!" "물러서라고 했어. 유빈. 내 말 안 들을거야?" "현석님!!!" 화가 나기도 해서 유빈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커졌다. "괜찮아. 물러서.." 하지만 태민의 간절한 목소리에 유빈은 맥이 빠졌다. 그리고 태민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그러기가 무섭게 주저앉는 태민이었다. "니 힘으로 이쪽으로 와봐. 못하겠어..?" "쿡. 미친 새끼.. 내가 왜 니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내가 반드시 그쪽으로 가야할 이유 가 있는 거냐?" 태민은 현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말했다. "이유야 만들면 있지.." "그럼 그 이유 좀 들어볼.... 으읍.." 순간 유빈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침에 태민에게서 현석의 흔적을 보는 유빈이긴 하였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세게 도리질치려는 태민의 뒷머리를 잡고 현석은 그에게 거친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그리고 바지째 태민의 페니스를 쥐었다. 하지만 태민의 신음성은 현석에게 막혀 나올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현석은 엄청나게 대담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태민은 뒤로 젖혀진 고개로 인한 목에서의 통증과 허리의 통증과 아래에서의 통증, 삼중고 를 겪고 있는 것이었다. 태민의 숨이 막힐 때쯤 현석은 그의 입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그곳이었다. "하악.. 하악... 미친.. 놈.... 흐윽.." "내가 미친놈이라는 거 이제 알았냐..?? 그럼, 미친셈치고 이 길거리에서 끝까지 가볼까..?" "뭐어??!!!! 으윽." 손이 뒤에 묶여 있어 현석을 밀지도 못하고 태민은 현석의 손이 주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몸이 저절로 현석에게로 기울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구......이..새꺄..." "킥.. 역시.. 넌 재밌어........" 현석은 웃으며 손을 떼고, 자신에게로 기댄 태민을 들쳐안았다. 그리고 옷가게로 들어갔다. #12 어딘가로 들어온 듯 했는데, 어디인지는 감을 전혀 못잡겠다. 태민은 무슨 소리가 들릴까 해서 귀를 쫑긋 세웠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길에 유빈이한테 물어보는 건데... "이쪽으로.." 여자 목소리다. 궁금해 죽겠지만 자존심 때문에 차마 먼저 물어보진 못하겠다. 현석은 그런 태민을 알고나 있는지 그 여자가 이끄는대로 따라갔다. 이곳은 정확히 말하면 옷가게가 아니다. 옷도 팔지만, 화장품, 악세사리뿐만 아니라 마사지까지 해주는, 한마디로 미(美)를 파는 곳 이다. 현석이 태민을 데리고 간 곳은 마사지 전용룸이었다. 침대에 태민을 내려놓았다. "끝날때까지 아무도 들여보내지마. 알았나?" "예.. 그럼, 전 이만.." "아! 그리고 유빈이한텐 끝날때까지 좀 기다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여자가 나가고 난 뒤, 현석은 침대에 눕혀져 있는 태민을 보았다. 그냥 가만히 엎드려 있는 걸로 보아 정말로 움직이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럼 솜씨를 좀 내볼까.. 태민이 누워있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신발을 벗고 태민의 위에 올라탔다. 순간 놀란 태민이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 "뭐하자는 거야!!" 지칠줄도 모르고 반항하는 태민을 현석은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엄청난 집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그를 향한 자신의 엄청난 집착이었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태민의 옷을 벗겼다. 태민은 금세 알몸이 되어 현석의 밑에 깔려 있었다.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현석에게 이때까지 받은 손길과는 다른,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목 뒷부분에서 천천히 내려가며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등의 패인 부분을 따라 태민의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있었다. 태민은 저항하던 것을 멈추고 부드러운 만져짐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현석의 손이 허리에 닿자, 태민은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몸을 움직였다. 아프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 어쩌면 유빈의 말대로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 두 번만의 섹스로 태민의 민감한 성감대를 웬만큼 찾아낸 현석은 그런 부분만 피해가며 안마를 해주고 있었다. "몸이 굳어있으면 오늘 하기가 힘들거 아냐... 킥." 태민은 자신의 귀에다 속삭이는 현석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잠시나마 이런 자식을 좋게 생각했다니, 잘못이었다. "미친 놈..." 험악한 말과는 달리 태민의 몸은 현석의 손길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런 더러운 기분은 생전 처음이었다. 현석과 만난 뒤로부터 하나도 제대로 된 일이 없어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난 상태였다. 옛날같은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던 성폭행.. 자신과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가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현석에게 제대로 된 마사지를 받았다. 거칠게 옷을 입히는 현석의 손길에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허리의 피로가 비명을 질렀 다. 다시 들쳐 업혀진 듯한 자세로 태민은 현석에 의해 끌려나갔다. 현석은 기다리고 있던 유빈에게 태민을 넘겨주었다. "오늘밤도 무리는 없겠지...? 쿡." "흐윽.." 또 다시 노리개가 되었다는 생각에 태민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현석은 유빈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는 가게를 나갔다. 유빈은 태민을 안고 대기되어 있는 차에 탔다.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 태민을 걱정스레 바라봤지만, 태민은 입술을 깨물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시간은 화살같다고 했던가.. 누군가가 시간은 약이라고 했던가.. 태민이 현석에게 끌려온지도 두달이 지나가고 있었다.(무책임한 자까..-_-:;;;;;;;) 원치 않아도 태민은 점점 현석에게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의 환경에 본능적으로 적응하고 있다고 할까.. 하루종일 유빈이랑 놀다가 밤에는 현석의 노리개가 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다를 것도 달라질 것도 없었다. 현석의 성적 노리개로서, 그리고 학대적 노리개로서 길들여져 가는 자신의 몸뚱아리가 증 오스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달라진 것을 굳이 찾으라면, 손목의 수갑을 풀렀다는 사실. 그리고.. 현석의 목적대로 어둠이 태민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간다는 사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니, 그런 날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가 못했다..... #13 누군가가 시간은 화살같다고 했던가.. 누군가가 시간은 약이라고 했던가.. 태민이 현석에게 끌려온지도 두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원치 않아도 태민은 점점 현석에게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의 환경에 본능적으로 적응하고 있다고 할까.. 하루종일 유빈이랑 놀다가 밤에는 현석의 노리개가 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다를 것도 달라질 것도 없었다. 현석의 성적 노리개로서, 그리고 학대적 노리개로서 길들여져 가는 자신의 몸뚱아리가 증 오스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달라진 것을 굳이 찾으라면, 손목의 수갑을 풀렀다는 사실. 그리고.. 현석의 목적대로 어둠이 태민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간다는 사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니, 그런 날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가 못했다..... 비록 몸은 이 곳에 적응을 하고 있지만, 태민은 이 곳을 탈출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유빈이랑은 더욱 친해졌지만 태민의 그런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모든 걸 유빈이에게 말한 태민이지만, 그런 마음은 말하지도, 표현하지도 않았다. 유빈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호피테스에 있는 그로서는 이런 말을 하기엔 위험하긴 마찬가지 였다. 그러던 태민은 기회를 잡았다. 자신에게서 한번도 떨어지지 않는 유빈이 없는 시간은 단 하나.. 자신의 밥을 가지러 가는 시간이었다. 방문은 항상 열려있지만, 태민은 그 문을 열고 나갈 자유는 없었다. 그리고 태민은 그 자유를 단 한 번, 자신이 탈출할때를 대비해 버려두었다. 삐기긱-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하루 24시간을 방에서 지낸 태민으로서는, 밖에 나가야만 할 상황일땐 안대를 찼던 태민으 로서는 생소했다. 하지만 낯선 세계에의 감상을 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고 봐야 했다. 조심스레 문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눈이 부셨다. 햇빛을 직접 이렇게 눈으로 본 게 얼마만이었을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으나 무조건 발 가는 대로 걸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지내온 곳이 산속에 있는 외딴 별장인가 싶을 정도로 차 한 대, 아니 제대로 된 길을 찾기 힘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발이 아파 오기 시작할 즈음, 태민은 차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대로였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길이었다.. 드디어 풀려났구나 하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안녕.. 유빈....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다음에 보게 된다면, 그때까지 건강해야돼..... 태민은 눈물을 닦고 아무 차나 잡기 시작했다. 길 가에 서서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러면 설마 차 한 대 정도는 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생각이 맞다는 듯 까만 차 한 대가 섰다. 태민은 달려가 조금만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안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선텐을 한, 그리고 무지 비싼차였다. 태민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만 태워달라고 했다. 뒷문이 열렸다. 승낙의 뜻이라 생각한 태민은 감사하다고 하면서 차에 탔다. 뒤에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차에 올라탄 태민은 고맙다고 말을 하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탈깍-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전부다 잠겼다. 하지만 태민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최.현.석. #14 그의 차를 알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 몇 번 타보기는 했지만, 항상 안대를 하고 있어서 알 수 없었다. 그를 얼마만에 보는 건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를 대하고 있을 때 역시 안대를 하고 있었기에... 항상 밤 늦게 들어오던 인간이 왜 이런 환한 대낮에....?? 하지만... 이런 엄청난 우연이.. 이런 엄청난 악연이.... 태민은 아무런 말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하나 했더니, 그게 안되서 어쩌지...?" 현석의 싸늘한 목소리.. 두 달동안 태민은 현석이 화를 내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상상은 갔다. 화를 내지 않는 평소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태민이었기에, 그가 한번 화가 나면 수습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확인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몸을 제어할 수 없었다. 현석은 그런 태민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왜이렇게 전화를 받는데 오래 걸려?" "현석..님...........??!!!" "뭐 그렇게 놀라?" "아, 아닙니다.." 태민은 현석이 전화를 한 사람이 유빈인 걸 알았다. 지금쯤 유빈인 내가 없어져서 찾아다니고 있을 텐데... "그 자식은 뭐하고 있어?" 태민은 놀라 현석을 바라보았다. 현석은 그런 태민은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 새끼 뭐하고 있냐고?" "아.. 그게.... 지금.... 태민님께선........" "뭐 그렇게 말을 더듬어..??" "아, 아닙니다... 지금 태민님께서는.... 주..주무시고 계십니다....." "자고 있다고?" "예..." 도대체 현석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지금 자신의 옆자리에 태민이 앉아있는데, 이게 무슨 행동이란 말인가.. "지금 들어가니까, 준비해놔." "예....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그새끼한테 전해줘.. 오늘 내가 기분이 최악이라서, 각오 좀 하고 있으라 고." 그렇다.. 저건 유빈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나보고 들으라는 소리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항상 모든 일에 실패란 없던 카닐라의 주태민이 아닌 것이다. 지금의 난, 최현석에 잡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창부 주태민인 것이다. 창부..... 그래, 창부......... 걸어올 땐 꽤 많이 걸은 듯 했는데, 차로 오니 금방이었다. 그렇게 빠져나오고 싶은 곳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앞에 나와있는 유빈이 보였다.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문 앞에 대는 차 뒷문으로 와 유빈이 문을 열었다. 당연히 현석이 나오리라 생각했던 유빈은 나오는 사람이 태민이자 놀란 눈을 감추지 않고 태민을 바라보았다. 뒤 따라 내리는 현석이 태민을 스쳐 지나가면서 유빈에게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한 징계는 각오해." "예..." 태민은 유빈을 미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빈은 예전과 다름없는 미소를 지으며 현석을 따라 들어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태민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현석을 따라 들어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현석... 아무 말 없이 따라가고는 있지만, 태민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방에 들어가선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현석은 커텐을 치고 있었다. 밝은 대낮이었으나 커튼을 다 치자 금세 어두워졌다. 어두워지자 태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15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내 태민이 입을 열었다. "유, 유빈에겐... 아무런... 잘못없어......" 순간 자신을 노려보는 현석의 눈길에 태민은 고개를 숙였다. "내가 몰래 나온거라고......." "이쪽으로 와." 아무런 변화 없는 목소리. 그것이 오히려 태민을 더욱 두렵게했다. 천천히 현석에게로 다가가자 현석은 태민을 잡아채 침대로 내동댕이쳤다. 침대가 크게 흔들렸다. 현석은 바로 태민의 위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유빈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그럼, 니가 유빈이 몫까지 감당해보겠나?? 그럼 유빈의 징계는 없던 일로 하지." "........." "니까짓게 지금 날 감당해보겠다는 거냐..??" "유빈은... 건들지마......" "좋아... 대신 각오는 돼 있겠지...?? 내가 끝이라는 것을 보여줄테니... 각오하라고..." 현석은 말이 끝나기와 동시에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민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저항은 할 수 없었다. 가만히 현석이 하는 대로 누워있었다. 태민의 옷을 다 벗긴 현석이 가만히 일어났다. "참, 안대를 씌워주지..." 안대를 쓰는 건 싫었지만 아무 소리하지 않고 현석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안대가 씌워지자 간간히 보이던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완벽한 어둠... "난 땀냄새 나는 건 싫어." 잠시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태민의 몸이 들렸다. 현석은 욕실로 걸어가 욕조안에 태민을 눕혔다. 샤워기를 틀었다. "으아악!" 얼음장 같이 차가운 샤워기 물이 태민의 몸에 떨어져내렸다. 한 여름에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정도로 추위를 잘 타는 태민이었다. 태민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의 몸을 감싸안으며 벌떡 일어났다. 잠깐 물에 맞은 것인데도 몸은 덜덜 떨고 있었다. "누워." "하, 하지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난 땀냄새 싫어." 태민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선택권도, 저항권도 없다... 태민은 덜덜 떨리는 몸을 뉘였다. 아까보다 더 세게 틀었는지 더 강하게 물이 떨어져 내렸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온몸에 퍼져갔다. 태민은 피하지도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물을 다 맞고 있었다. 금세 입술이 파래졌다. 태민의 거친 숨소리가 꼭 깨문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추, 추워.... 흐윽......" 죽을 것 같았다. 정말로 거짓말 안하고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미 사고회로는 멈춘지 오래였다. 뼈 속까지 시려오는 이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선 무슨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어서." 태민은 이미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몸을 겨우 일으켰다. 몸 구석구석 샅샅이 뿌려대는 물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허억.. 헉..." 손끝이 저려왔다. "추.....워......." 머리가 어지러웠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세차게 뿜어대던 샤워기에서 물이 끊겼다. 태민은 끝났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었다. #16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세차게 뿜어대던 샤워기에서 물이 끊겼다. 태민은 끝났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었다. "제발..... 그만....... 흐윽...." "뭘 원해?" "제발... 따뜻하게..... 따..뜻하게......" "어떻게 해줄까?" 바들바들 떨고 있는 태민을 차갑게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현석이었다. "어떻게 따뜻하게 해 달라고?" "흐, 흐윽... 따..뜻....하게..만......." "......." 무엇이든지 따뜻한 거면 괜찮았다. 무엇이든지 몸을 녹일 수 있는 거면 괜찮았다. 하지만.. 왜일까.... 그 순간 태민은 현석의 따뜻한 몸이 그리워졌다. 춥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점점 커질수록 현석의 따뜻함에 대한 그리움도 같이 커져갔다. "......안....아.........줘.............." "주세요." 현석은 태민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 예상을 한 듯했다. "흐윽... 안아...주세요........... 제발....... 추..워......... 안아주세요..... 제발요....... 흐흑..." 현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온 몸이 시려올 정도의 차가움이 몸 속 깊숙이 스며들어간 것 같았다. 손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이가 딱딱 부딪쳤다. "제발..... 안아주....세요......" 현석은 태민에게 다가가 태민이 내밀은 손을 잡았다. 태민은 현석에게 달려들어가 안겼다. 태민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현석의 목을 팔로 감았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현석의 몸이 닿자 서늘한 태민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태민은 이내 따뜻한 현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현석은 태민의 몸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욕실에서 나왔다. 숨이 막힐 정도로 있는 힘을 다 주어 현석을 안는 태민 때문에 그대로 안은 채로 말이다. 방에는 유빈이 있었다. 급한 전화를 현석에게 연결시켜 주기 위해 왔는데, 역시나 침대위엔 둘의 옷이 내팽겨쳐져 있었다. 그리곤 문이 열려있는 욕실에선 태민이 안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차라리 도망 갈거면 영원히 사라지시지 왜 이렇게 돌아오신 겁니까.. 언젠가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가시지 않으면 영원히 현석님께 잡혀 사신단 말입니다.. 제게 말씀주셨으면 도와드렸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저를 믿지 못하셨습니까.. 현석님 곁에서 너무나 힘들어 하는 게 눈에 훤히 다 보이는데.. 왜 다시 잡혀오셨단 말입니까.. 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셨단 말입니까.. 도와드렸을텐데..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드렸을텐데.. 왜 저를 믿지 않으셨습니까.. 왜 저를 믿지 못하셨습니까..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유빈은 벌거벗은 채로 현석이 태민을 안고 나오는 것을 보곤 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유빈을 스쳐지나 침대로 걸어갔다. 태민을 침대에 내려놓으려 하자 태민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현석의 목에 감은 손을 풀지않았다. "이런다고 오늘 일을 봐주진 않아." 현석은 태민의 귀에다 이렇게 속삭였다. 흠칫 몸을 떨면서 태민은 손을 풀고 침대에 돌아누웠다. "무슨 일이야?" 태민이 현석 쪽으로 돌아봤다. 무슨 뜻이지...?? "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