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님의 글입니다.. [그녀석과의 게임][주씨아저씨네 일곱형제 이야기]등의 발군의 작품을 쓰신 분입니다. ㅎㅎ 함께 즐겨주세요.... 그럼!! 감상과 추천의 손길...잊지말아주세요.~~~ ============================================================================== 청명(나리세)님~ 제가 닉을 두가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뻔뻔하다고 하심..저 상처받을지도~~~~ 칼라동에서는 저는 건빵이라는 닉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새로운 설을 올리면서 새로운 닉을 썼었는데... "예지몽"을 한 편 올렸더니 어느님이 제가 달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사실 전 아무도 저를 모를 줄 알고 올렸던 거거든요~ 님께서 그 곳에 놀러오신다면 태그를 풀어두겠습니다. 아니면 님께서 메일을 주신다거나 하면 제가 그 때 태그를 풀게요~~~ 청명님이 보내주신 감상을 입이 헤벌쭉해서 보고 있습니다. 너무 큰 힘이 되어서 감사하구요~~ 더운데 힘내시고 님도 건강조심하세요~~~ 저도 오늘 날씨가 더워 혼이 났더랬죠`~~ ============================================================================== 건빵님의 메일 주소<[email protected]> -기막힌 제안- by. 건빵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독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고독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이의 소중함도 알지 못한다.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이지만,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를 잃었을 때의 절망감 또한 그 사랑의 배라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소중하나니.....' 제 1화 - 그와 나 - "내일부터 방학인데 어떻게 할거야?" 젖은 머리를 털며 나는 현서에게 말을 건넸다. 밤에 머리를 감아서인지 거울에 비친 머리칼은 물기를 머금어 탐스럽게 빛나 보였다. 촉촉하게 젖은 머리는 물기를 머금고 훨씬 차분해져 있다. 가느다란 머리칼이 조금은 윤기를 되찾은 듯한 그 모습에 머리를 털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진다. 그런 나를 보며 현서는 내 머릿결이 더 나빠질거라며 놀리곤 했었다. 현서는 내가 건넨 말을 이해 못한 듯 책장을 넘기던 손을 잠시 멈추고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본다. "내 말 못들었어? 내일부터 어떡할거냐고 물었어." 갈색의 예쁜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리며 녀석은 빙그레 웃었다. 마치 장난꾸러기 같은 그 모습에 내 입가가 삐죽이며 올라가려 했지만 머리를 빗는 척하며 웃음을 감춘다. "음...선배 어떻게 할까? 그냥 집에 내려갈까 아니면 선배랑 같이 이곳 기숙사에 남을까~ 선배가 결정해 주면 좋지~" 탁타닥- 나는 기껏 빗어 단정히 한 머리를 다시 사납게 수건으로 털었다. 기숙생들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가 텅 비다시피 한 기숙사는 얼마나 조용했던지 내가 머리 터는 소리까지 울렸다. "난 네 엄마가 아니니까 그런 결정은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해." "어? 그럼 안되는데... 난 선배가 시키는 대로할거라구, 선배가 남으라면 남고 가라면 가고...." "그럼 집으로 내려가. 이제 됐지?" 그의 어린애 투정같은 말에 조금 짜증이 난 나는 헝클어진 머리채로 책상에 앉아 전공서적을 펴 들었다. 그러나 기껏 펴든 책의 내용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서가 내게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는 알지만 그가 나 때문에 이곳에 남게 된다면 결국 녀석이 해 오는 그 어떤 요구도 나는 거절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대학에 와서 처음 맞는 방학이었고 내 상식으로는 그가 집에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잘라 말하는 내 대답에 조용해진 현서를 돌아보자 그는 잠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숙사 마당에 피어 있는 벚나무 근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벚꽃은 예전에 지고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벚꽃이 아니라 단지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부모님 못 뵌지도 꽤 됐잖아. 대학와서 처음 맞은 방학인데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 "내가 선배에게 듣고 싶은 말..그런 거 아니란 거 잘 알잖아." 투정어린 그의 말. 현서는 강씨 집안의 4대 독자라고 했다. 나처럼 4남매중의 장남이 아니라서 그런지 여린 듯 하면서도 자기 고집이 강하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난 나 때문에 네가 사람으로서의 도리도 못하고 사는 거 원하지 않아." "내가 가고 나면 선배는...그럼 선배는 어떡할건데? 혼자 이 기숙사에 남아 있을거면서.." "아니, 나도 친척집에 가 있기로 했어. 그리고 기숙사에 남는다해도 혼자는 아냐. 이번에 집에 안 내려가는 동기녀석들도 꽤 있으니까." 사실이었다. 취업 4학년이 어떻게 집에 내려 갈 수 있겠는가. 취업준비만 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금세 다시 불만스런 얼굴이 된다. "나도 그냥 남고 싶은데..." "됐어. 이제 됐으니까 얼른 내려갈 준비해. 서울까지 유학보내주신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쳇~ 세영 선배는 너무 냉정하단 말야. 내가 선배 사랑하는 마음의 십분의 일만큼도 선배는 나 사랑하지 않을거야." 현서는 내 목을 감싸 안으며 부드러운 입술을 내게 부딪쳤다. 자연스레 열린 내 입술로 그의 혀가 감겨온다. 현서야 내가 너의 솔직함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이라도 지녔더라면 네가 내게 사랑한다고 속삭인 말의 두배만큼 사랑을 속삭였을거야. 하지만 나이 먹어 간다는 것은 더군다나 상대방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재어보게 하고 망설이게 한다. 손해보는 것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상처받는 것이 싫은 것이다. "우...응..." 달콤한 키스에 내입술 사이로 신음이 저절로 새어나가자 그는 얼른 손으로 내 입술을 막았다. "쉬잇..선배... 소리가 너무 커요.." "..........." 그의 핀잔 아닌 핀잔에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한 채 얼굴을 붉히며 그를 밀어냈지만 현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벽으로 밀어부친다. 체격면에서도 열세였길래 어쩔 수 없이 벽과 등을 마주한 내게 서늘한 콘크리트의 감촉이 느껴졌다. "선배......나 없는 동안에 바람피면 안돼요..그럼 나 질투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현서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높임말과 반말을 섞어 쓰고 있었다. 긴장하거나 하기 어려운 말을 꺼낼때면 늘 말을 높여 하길래 나는 그것이 재미있어서 굳이 고치게 하지도 않았다. 방금 샤워를 마친 내 서늘한 몸에 그의 뜨거운 혀가 헤메고 다녔다. 마치 낙인이라도 찍듯 현서는 그 행위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목을 물어뜯기라도 할 듯 핥아오는 그의 혀와 이의 감촉....오싹한 느낌이다. 드러나 쇄골을 핥던 혀는 어느새 내 유두를 핥아 오고 있었다. "하앗...흐..으윽..."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원치 않았는데도 열에 들뜬 내 몸은 그 열정을 소리로 표출하려는듯...현서의 커다란 손이 다시 내 입을 막아오자 참을 수 없을만큼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얼른 그의 손바닥을 사납게 깨물었다. "아얏!!" 유두를 깨물고 있던 현서의 입에서는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선배....아프다구~" 현서의 불만어린 투정에도 화가 났다. 알 수 없는 분한 마음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세영 선배...... 왜....?" "오늘은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자도록 하자." 현서는 갑작스런 내 행동에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드러난 내 어깨를 건드렸다. "선배.." "그냥 자자고 했잖아. 됐으니까 손대지 마. 내일 일찍 가봐야 할 거 아냐. 네 어머니가 기차표까지 끊어서 보내 주신 거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셈이 아니라면 말야. " "그럼 기차표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거예요? 하지만 나 정말로 선배가 가지 말라면 안 갈 생각이었는데. " "알고 있어. .... 그것 때문에 화 난 것 아니니까 신경 쓰지마." 욕실로 들어갔다.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바보같다는 생각에 거울을 쳐다보자 눈가가 부어 보기 흉한 사내가 벌거벗은 채로 서 있었다. 현서가 아프도록 깨물었던 유두가 화끈거려 손으로 쓸었다. 깨물린 부분이 붉게 부풀어 올라 묘하게 색정적으로 보였다. "일찍 돌아올 거야." "................" 욕실문 너머로 들려오는 사죄하는 듯한 현서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채 욕실을 나와 잠옷을 걸치고 2층 내침대로 올라갔다. ** 감사합니다 ,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건빵]기막힌 제안-2 닿을 듯 한 천장에는 현서가 붙여둔 야광별이 보였다. 어린애같은 이 녀석은 그런 걸 좋아해서 이 방에는 프라모델이나 조각배같은 것들이 가득했다.어린애 같은 녀석...아니 녀석은 아직 어린애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온 이 녀석은 내게 아직 어린애였다. "선배...." 20여분 정도가 지났을까...현서의 낮은 부름이 들려왔지만 나는 짐짓 잠이라도 자는 듯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세영선배... 사랑해~." 어린아이 같이 툭툭 내던지는 솔직한 그의 말에 기뻤고 그의 말이 진심임을 알고 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그보다 어른이기에 섣부른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내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기다려야했다. 그 때가 되어서도 현서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준다면 나 또한 솔직하게 대답할 것이다. *** 이른 오후의 플랫폼은 혼잡했다. 여름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여기 저기 짐을 든 채로 서성이고 있었고 간혹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나 신혼여행이라도 가는 듯 곱게 차려입은 남녀도 눈에 띄었다. 시원스럽고 화려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사람들 속에 현서와 나는 어중간하게 서 있었다. 남들이 보면..그저 형과 동생정도로 보일테지만 소심한 나는 그것도 신경이 쓰인다. "잘 갔다 와."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었을 뿐이었는데도 길가던 사람들은 현서를 돌아보곤 했다. 커다란 키에 하얀 피부가 두드러져 보이는 현서는 오늘따라 어딘지 모르게 귀티나 보였고 나도 그를 처음보는 듯 잠시 바라보았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눈동자를 굴리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서 있는 현서의 등을 나는 억지로 떠밀었다. "어서 갔다 와. 2주일 있다 다시 올 거면서 뭘 그리 망설여? 설마 너 안올 생각은 아니겠지?" 내가 농담처럼 건넨 진담에 현서는 펄쩍 뛰며 고개를 강하게 가로 저었다. 약간 길게 자란 현서의 찰랑이는 머리가 아래위로 흔들렸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를 손으로 쓸어주며 나는 다시 현서의 입술에 가만히 손가락으로 만져주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와라. 알았지?" "알았어. 선배도...몸 건강히 있어야 해." 다정한 갈색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커다란 키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순진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나는 살짝 웃어주었다. "응. 너도 건강해." 열차 출발을 알리는 벨소리에 기차에 타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손을 흔들었다. 좌석표를 손에 든 채로 여전히 좌석을 찾지 못한 현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길래 나는 한참을 더 그를 따라 움직였다. 다행히 어떤 친절한 아가씨의 도움으로 자리를 찾은 그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플랫폼에서 기차를 따라 뛰어온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도 내게 꾸벅 인사를 하며 무슨 말인가를 현서에게 건네자 그는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손짓발짓을 이용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그 아가씨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현서야..그렇게 웃지마. 그렇게 다정한 웃음 아무에게나 보이지 마. 난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넌 그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게 화가 나. 마음이 아프다. 현서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온 26년이었다. 그런데 지금 단지 2주를 떨어져 지낸다고 해서 이렇게 텅 빈 마음이 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그가 나와 헤어진다고 한다면... 그러면 나 어쩌면 죽어버릴지도 모르겠어. 멀어지는 기차를 바라보며 나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자연스럽고 다정해 보이던 그 두사람. 나 스스로와 묘한 감정싸움을 하며 녀석이 타고 가는 열차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데도 한참을 철길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거리는 여름의 열기 속에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가 가 버린 텅 빈방으로 들어서자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억지로 빼앗긴 아이 같은 억울한 심정이 되어 현서의 침대로 파고들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시트에 내 볼을 부벼댔다. 좀 더 솔직하지 못한 내 자신을 꾸짖으면서 그를 그리워했다. 그는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 힘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 나 자신조차 들어설 곳이 없었던 내 마음 한 구석에 그를 불러들였던 것은 내게는 큰 모험이었다. 그러니까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나를 두고 떠난다면 나는 다시는 일어 설 수조차 없을테니까. 사랑하는 것보다는 사랑하지 않는 척 하는 것이 더 힘들지만 헤어짐이 두려운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들어 있다는 그 별들 하나 하나에 키스했다. 현서가 돌아온다면 더 많은 별들을 붙이자고 해야겠다. *** 제 2화 기막힌 제안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강하게 흔들고 있었다. "아파...." 머리가 울려올 정도로 반복되는 그 행동에 나는 짜증스레 뱉었다. "일어나 봐 세영아~ 얼른~" 지끈거리는 머리를 베개 속에다 파묻었지만 그 집요한 행동은 계속된다. "세영아~~" "빌어먹을!!!" 나는 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괴롭힌 상대를 향해 베개를 힘껏 내리쳤다. "아얏!!" 힘들게 눈을 뜨고 상대방을 바라보니 203호실의 용재녀석이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 수 있었던 나는 화가 나는 걸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눈은 발갛게 충혈이 되어 있었고 얼굴은 푸석푸석해보여 나는 욕실로 직행해야했다. 대충 세수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용재 녀석도 미안했던지 배실배실 웃으며 나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제 잠 못잤어? 눈이 빨갛다 너~" "남의 일엔 상관마. 무슨 일인데 새벽부터 난리야?" "어? 지금 시간이 몇신데 새벽이라는 거야 ~ 벌써 해가 중천에 떴는데, 지금 오후 3시야 3시." "무슨 소리야? 벌써..." 머리맡에 두었던 시계를 보고서야 용재 녀석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되었지? 방금 전에 잠이 든 것 같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흘렀음에 놀라고 있는데 갑자기 용재 녀석의 넓적하고 주근깨가 박힌 얼굴이 눈앞에 들이닥쳐 나는 깜짝 놀랐다. "으엣!! 너 갑자기 왜 그래?" 용재 녀석은 날씬해 보이는 금테 안경을 손으로 쓱 밀어 올리며 웃었다. "좋은 일이 있어서 말야. 간섭쟁이 현서 녀석도 없어졌고~ 세영이 너도 자유로울 거 아냐~" 용재는 무슨 밀담이라도 나누듯 내 귀에 입을 갖다대고 속삭였다. "203호실에서 몇 명이서 포커하고 있거든~ 너도 생각있음 오라구. 너 꽤 잘하잖아." "관심없어."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며 딱 잘라 말했다. 현서의 침대에 남아 있던 내 온기가 마치 그의 온기이라도 한 듯 얼굴을 댔다. 그런데도 용재는 다시 끈질기게 내게 달라붙어서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뭐 어때? 그냥 심심풀이로 하는 건데 우리가 무슨 억대 내기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세영아~~ 잘만하면 담뱃값 정도는 벌 수 있다구. 응?" 평소라면 내가 싫다고 딱 잘라 얘기하면 내 성격을 알고 있는 이 녀석도 더 이상 권하지 않았었는데 ...오늘따라 용재는 유난스레 자꾸 귀찮게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래 너? 내가 싫다고 했잖아." "세영아~~ 너처럼 잘하는 녀석이 한 명쯤은 있어야 판이 돌아가지. 바보들만 있으면 판이 안되잖아." 숙사에 남아 있다고 해서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내기 도박같은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예전에 돈이 없을 적에는 내기 포카 같은 것도 했었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었다. 현서도 극히 그런 것들을 싫어했기에 나는 다른 동기 녀석들과도 그런 내기 같은 것은 한 적이 없었다. "큰 돈 걸고 하는 거 아냐? " "야~ 우리가 큰 돈 걸려고 해도 그만한 돈이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냥 심심하니까 하는 거지 뭐~ 2만원 정도만 있으면 돼"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사실 안 한지도 꽤 되었고..." "야야~ 그만 해라. 너랑 포카하고 싶다는 녀석은 나랑 둬서 지금 내리 7판을 깨지고 있다구. 크크~ 그럼 넌 나보다는 잘하니까 당연히 이길 거 아냐?" "그런 문제가 아냐..그냥... 그래, 한 번 가 보기나 하자." "잘 생각했어. 얼른 가자. 그 녀석들 우리 기다리다 목이 빠졌겠다." 여전히 불쾌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달라붙듯이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도 떨쳐 버릴 겸해서 용재를 따라 일어났다. 203호실 문을 열었을 때는 매캐한 담배연기가 자욱히 깔려 있었고 사내놈들이 3명 정도 둘러앉아 있었다. "야~ 여기 세영이 데려왔어. 이제 우리 다섯이서 하면 되는 거지?" 그 곳에는 한 두 번은 수인사를 나눴을 기숙사 녀석들과 처음 보는 낯선 인물이 있었다. 용재는 나를 대충 그들에게 인사시키더니 처음 보는 남자에게는 좀 자세히 인사시켰다. "다른 놈들은 세영이 알 테고~ 세영아, 이 쪽은 경영학과 서지환씨야. 서지환씨, 이 잘생긴 녀석은 제 친구 윤세영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세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서지환입니다." 그의 첫 인상은 조금 차가워 보이는 인텔리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외과의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은테 안경 속에 가려진 가느다랗게 뜬눈이 그랬고 매끄러워 보이는 피부와 웃음을 머금고 있는 듯한 얇은 입술이 그랬다.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나는 차가운 손의 감촉에 또 한 번 놀랐다. "세영아. 거기 앉아. 어이~ 거기 너희들 창문 좀 열어서 환기 좀 시켜라. 너구리 잡을 일 있냐?" 용재의 말에 키 큰 녀석 하나가 밍기적거리며 일어나 기숙사실의 창문을 열었다. 냉방이 잘 됐던 방에 후끈한 바람이 확 얼굴에 끼쳐와 나는 기분이 일순간에 불쾌해졌다. "자~ 그럼 대충 인사 끝났으면 패를 돌리자구요~~" 용재는 내게 넌지시 윙크를 하며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고 나도 녀석에게 웃어주며 가벼운 마음으로 카드를 넘겨받았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짝~짝짝짝 [건빵]기막힌 제안-3 예상대로 그는 지독하게 포커를 못했다. 이거야 몇 번을 해도 내리 연속으로 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시작한지 채 1시간도 안되었는 데 그가 잃은 돈은 벌써 20만원에 달했다. 그가 계속 판돈을 올린 탓도 있었지만..... 잠시 담배를 한 대 태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용재녀석에게 넌지시 귀엣말을 건넸다. "이거 우리가 너무 심한 거 아냐? 저 사람 보니까 포커는 거의 오늘이 처음인 거 같던데 이제 그만하자." "그럴까? 킥킥~~ 하긴 해도 너무 못하더라. 그런 주제에 판돈 계속 올리는 거 봤지? 초짜들은 저래서 문제라니까, 그럼 여기서 끝내지 뭐." "그래."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에게 그만하자고 제의했고 그 역시 조금 섭섭한 얼굴로 그러자고 동의했다. 돈을 딴 용재일행은 얼굴가득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이 번 돈을 세고 있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내일도 하실 겁니까?" 그는 방을 나가며 아쉽다는 듯이 우리에게 물었고 용재와 그 패거리는 대충 눈치를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는 거의 매일 뭉쳐요. 왜 그러시는데요?" "그럼 실례만 안된다면 제가 내일 또 와도 될까요?" 용재와 그 패거리들은 반색을 하며 반겼다. 하긴 그들로서는 게임에는 맹한 그가 내일 또 와서 돈을 잃어 준다는데..싫을 것이 없겠지. "그런 건 상관없겠지만 ...그런데 오늘 돈을 꽤 잃으셨을텐데..괜찮으세요?" 걱정스레 건넨 내 말에 그는 씨익 웃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작은 사업체를 하나 하고 있어서요. 돈보다는 친구를 사귀고 싶었거든요. 친구를 얻기 위한 일인데..이런 돈쯤 얼마가 들어도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세영씨도 꼭 오세요." "아..네, 그럼 내일 뵙죠." 그는 정말 기쁘다는 듯이 웃었고 용재또한 그의 친구가 되어 준다는 보답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돈으로 친구를 사귀겠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히 하다니....좀 특이한 사람인 듯했다. ***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추어 그는 203호실로 찾아왔다. 두둑한 돈을 가지고서 말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날도 그는 가지고 왔던 돈을 모두 잃고서 돌아갔다. 이런 일이 일주일 가까이 반복되자 나는 내심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그의 것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듯 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근래 3일 동안은 그가 나와만 게임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의 돈은 거의 내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서 따내 돈만도 100만원 가까이 되고 있었다. 딱 일주일이 되는 날 나는 조금 일찍 만나자는 그의 의견을 따라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203호 아지트로 먼저 가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 것을 기다려 나는 그에게 그만하자고 말을 꺼냈다. "저어..서지환씨, 이제 이런 내기게임은 그만 하시는 게 어떨까요? 매번 저만 판을 이기니까..죄송하기도 하고~~다음에 실력을 좀 길러서 오시면 그 때 다시 하도록 하죠 그때까지는 제가 그냥 케임 상대가 되어 드릴테니까 어떠세요?" 내 말을 듣던 그는 가져온 맥주와 안주를 꺼냈다. "괜찮다고 말씀드렸을텐데요. 저에게는 그런 돈쯤 푼돈이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아뇨. 제가 왠지 지환씨를 속이는 것 같아서....어쨌든 이젠 그만 두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곤란한데요.." "네?" 흘깃 바라본 그의 표정은 정말 곤란하다는 듯 이마에 깊은 골을 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다시 올려다본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딱 한 번만 더 저와 내기를 하시죠." 생각지도 못한 그의 제안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내 말을 듣기나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서지환씨..." "딱 한번 만입니다. 그 이후에는 절대로 내기 게임을 하자는 말씀은 안드리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도 두지 않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는 싱긋 웃으며 내게 내기를 제의했고 나도 그만두자고 하는 것이 왠지 너무 일방적인 내 의견이 아닐까 내심 고심하던 중이라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얼마를 걸고 할까요?" "뭐...돈을 걸고 하는 내기라면 제게는 별로 의미가 없어서요. 말씀드렸던 대로 100만원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니까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정말 사심없이 건네는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돈이 내기 조건이 아니라면 나로서는 별로 내 걸만 한 것이 없었기에 내심 고민을 하며 카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럼 뭐가 좋을까요? " "체인지 파트너...." "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카드를 돌리던 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농담일거라 생각하고 올려다본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잠시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놀라셨나요? 파트너를 교환하자고 했습니다." "파트너 교환요?" 나는 바보처럼 그가 한 말을 흉내내고 있었다. "네~ 당신 파트너와 내 파트너를 서로 바꾸자는 게 내기 조건입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황당한 그의 제의에 나는 난폭하게 카드를 테이블에 집어 던지며 일어섰다. 그러자 그가 내 팔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이것 놓으십시오. " "세영씨, 잠깐만 앉아 보세요~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요." "손해든 아니든 난 ...." "당신이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가 애인이 남자이기 때문이라면 안심하시죠." 그의 말에 나는 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떻게? 서지환은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 내 팔을 끌어당겼고 나는 힘없이 의자에 도로 앉혀졌다. "나도 동류니까요....알 수 있어요. 시시한 돈 내기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서 해 본 말 일 뿐이랍니다. 그렇게 사색이 될 필요 없어요. 대신 당신이 나와의 내기에서 이기든 지든 당신들 두 사람이 살 집을 한 채 드리죠." 뭐..........? 난 이 기막힌 제안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솔직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게다가 이건 제게도 별로 손해되는 건 없답니다." "당신이 손해 보는 게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집 한 채가 고스란히 날아갈지도 모르는데..손해 보는 게 없다니..절 놀리시는 겁니까!!" 강력한 내 항의에도 그는 빙그레 웃음 띤 얼굴이었다. 질릴만큼 잘생겼지만 어딘가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세영씨가 이긴다해도 제가 손해 보는 게 없다는 건 사실입니다. 가지고 있던 빈집이 있으니까 그걸 무상으로 사용할 권리를 드리는 거니까요. 세영씨가 원하는 날까지 무상으로 사셔도 됩니다. 원하신다면 죽을 때까지~ 게다가 세영씨와 게임을 해서 제가 이길 확률은 거의 없죠." 그랬다. 이 한심한 인간은 일주일을 내리 내게 져 오지 않았던가? 그렇더라도 뭔가 이상했다. 혹시 내게 본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란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의 실력은 포카를 배우기 시작한 초짜임이 틀림없었다. "난 그런 위험한 내기 할 마음 없습니다. 100만원 때문에 그러신다면 돌려드리죠." 나는 쓰지 않고 모아뒀던 100만원이 든 봉투를 꺼내 그에게 던져 주었다. 바닥에 떨어진 돈봉투를 보는 그의 얼굴이 슬픈 듯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제가 세영씨 기분을 상하게 해 드린 듯 하군요. 죄송합니다. 전 그런 의도로 꺼낸 제안이 아니라 단지.........아닙니다. 기숙사 방에서 힘들게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을 봤기에..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의 말에 내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어떻게 이 남자가 그것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뭡니까? 우리들이 불쌍해서 당신이 좀 도와주고 싶다는 겁니까? 당신이 같은 호모 섹슈얼이라고 해서? 웃기지도 않는 개소리로군" 내 말에 그는 잠시 딱딱한 얼굴이 되어 내가 바닥에 던져둔 돈을 집어들더니 내 호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이 돈은 세영씨가 정당하게 번 돈이니 가지도록 하시죠. 그리고...하늘에 맹세코 세영씨와 카드를 두었을 때의 그것은 제 실력이었습니다. 그럼 죄송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 깨끗하게 일어서서 방을 나갔고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건빵입니다. 호호~~ 감사합니다아~ [건빵]기막힌 제안-4 그러나 그의 말로 혼란스러워진 것은 나 자신이었다. 다음날도 여전히 그의 제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실...넉넉하지 못한 현서와 내게 있어서 그의 제안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지 모른다. 기숙사실에서 사랑을 나눌 때도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옆방으로 신음소리가 흘러 들어갈까봐 항상 조심 또 조심을 했었다. 그것 때문에 나 자신이 얼마나 비참해 졌었는지 ..그리고 현서에게 자주 짜증을 내곤 했었다. "빌어먹을!!!" 나는 꼬박 이틀 동안 고민을 해야 했고 마침내는 그의 제안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때론 너무 많은 고민은 사람의 이성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나는 어느새 일어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약속 시간까지 정해버렸다. "내일 10시쯤에 만나도록 하죠. 내 방에서 말입니다. 아뇨. 지금..현서는 고향에 내려가서 아무도 없어요. 그러죠." 상대방은 내 제의에 흔쾌히 응했고 나는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수화기를 내렸다. 그는 약속시간에서 일분도 어긋나지 않게 정시에 도착했다. 여전히 손에는 먹을 것들을 잔뜩 가지고 들어와서 테이블에 얹어 놓았다. "들어오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이 방은 다른 방들과는 달리 주인의 취미가 그대로 드러나는군요. 현서군은 이런 프라모델을 좋아하나보군요." 서지환은 현서의 헬기 프라모델을 손으로 매만지며 말을 했지만 나는 깜짝 놀라서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아! 만지지 마세요. 현서는 누가 자기 걸 손대는 걸 매우 싫어해서요. 조금만 손을 대도 금세 안다니까요. 아직 애라서 이런 걸 좋아하죠." "그럴까요...알았습니다. 그럼 게임 얘긴데 , 그 때 내기 조건을 그대로 걸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죠. " 내 대답에 만족을 했는지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의 얼굴에는 진심에서 우러난 기뻐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서 왠지 그에 대한 신뢰가 생겨났다. "그럼....먼저 카드패를 돌려주세요." "그러죠." 그가 하자고 제안한 게임은 블랙잭이었다. . . . . 황당했다. 거짓말 같은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완전한 나의 패배였다. "내게... 거짓말..거짓말을..... 하셨던가요. 서지환씨...." 나는 너무나도 기막힌 현실에 목이 메어 끊어 읽듯 말을 뱉어내야 했다. 내가 지다니....이럴 수가... "아뇨. 포커가 처음이라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세영씨.. 다만 몇 날 며칠을 연구했죠. 당신이 주로 두는 패턴같은 것들도 파악하며...... 이길 궁리로 며칠을 보냈더랍니다." 멋지게 미소지은 얼굴로 그는 거리낌없이 말을 뱉었다. "나쁜..자...식..." 억울함에 숨이 넘어갈 것 같았지만 그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말을 뱉어냈다. "내기 조건 이행은 당신 연인이 돌아오는 다음 주부터니까 미리 연락이라도 해 두록 하시죠. 너무 놀라지 않도록~ 그럼 다음주에 보도록 합시다!!!" "비열한 자식!!! 이.... 우웁~"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그의 키스에 치를 떨며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우웃..아픈데... 마치 사나운 암코양이 같군.... 너로선 손해 보는 게 없잖아? 이번 한달만 지나면 집 한 채가 고스란히 네 손에 남을텐데.... 안그래?" 그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얼굴표정은 원래대로 냉랭하게 돌아와 있었다. "그럼 다음주를 기대하고 있겠어." 나는 내 무모한 선택으로 인한 실수에 크게 후회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생겨난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를 찾아가서 없던 일로 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할까. 생각들만 어지럽게 머릿속을 헤메고 돌아다닐 뿐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몇십분 동안이나 그렇게 서 있었다. 제 3 화 비밀 "선배 나 돌아왔어~~" 현서는 환한 얼굴이 되어 들어오자마자 내게 키스를 퍼부었다. 조금 마른 듯했던 그의 몸에 근육이 붙어 탄탄한 가슴이 느껴졌다. 갈색눈동자가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 눈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내 목을 감아오는 그의 팔을 풀며 나는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선배~ 나 돌아온 거 하나도 안 기쁜 거야? 왜 그렇게 뚱해 있는 거야. 음...내가 너무 늦게 왔나.." 그는 특유의 푸르름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내게 감겨온다. 사내다운 넓은 가슴으로 내 등을 안아오자 내 가슴도 쿵쾅거리며 뛰었다. "현서야...할 말이 있어." 현서는 방금 샤워를 마친 내 머리칼 속에 얼굴을 묻고 혼자서 무언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으응..선배, 선배의 이 향기가 너무 그리웠어. 도대체 똑같은 샴푸를 쓰는데도 왜 선배 몸에서만 이렇게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거야?" 현서는 내 목덜미를 핥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기에 현서의 그런 행동을 저지하며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도록 했다. "현서야... 나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봐." 갸름한 얼굴에 아직 소년티가 남은 현서는 내 말에 그제서야 나를 바라본다. 약간 태운 듯한 부드러운 밀색을 띤 이마에 의아하다는 듯 주름이 하나 잡힌다.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상냥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자 가슴 한 구석에서 묘한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뭔데 그렇게 망설여?" 환하게 웃자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났다. "현서야.......나하고 한달만 떨어져서 지낼 수 있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두서없이 꺼낸 내 말에 현서의 갈색 눈동자는 휘둥그래졌다. "에? 무슨 말이야? 선배 어디 가는 거예요?" "너.........내가 너와 처음 사귈 때 했던 말 아직 잊지 않았겠지. 내가 너와 사귀기 전에 붙어 있던 전제조건 같은 거 말야." 현서는 그제서야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응. 기억해. 그게 어때서?" "그 때 분명 내가 원하는 대로 전부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어. 너도 동의했었고.. 그게 내가 너와 사귀는 조건이었지." "기억하고 있어요. 근데 그 얘길 왜 지금 꺼내는 건데요? " 불안한 듯 현서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현서야 나 아무래도 너와 한달 동안 떨어져서 지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너도..."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모든 내막을 밝힐 수는 없었다. 현서가 이런 일에 동의해 줄 리가 없으니까. 나는 입술을 깨물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현서에겐 너무 미안한 일이었지만 모든 건 내 책임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랬다. 시간이 흐른 후에...적어도 한달이 흐른 뒤에 설명을 해 준다면 현서는, 그래 이 착한 후배는 날 이해해 줄 것이다. 입술이 바싹 바싹 타는 듯한 느낌에 나는 마찬가지로 메마른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주일 전 내가 아는 사람한테서 제의를 하나 받았어. " "제의를요?" 강아지처럼 순진한 그의 갈색눈동자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운 게 보였다. 긴장한 체 자신도 모르게 높임말을 쓰고 있었다. "...그 쪽도 호모섹슈얼이야. 그래서...파트너를....자기 파트너를... 교환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었어." 내 말에 그의 얼굴표정이 금세 일그러지며 눈은 동그랗게 떠져 있었다. 마치....여름뙤약볕을 너무 쬔 병아리 새끼마냥 멍한 얼굴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파트너를 교환하다니..무슨 말이죠?" 그는 정말 의아하다는 듯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놀랐지... 말 그대로야. 그 사람 의견이었는데 처음에는 나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말야. 잘 생각해보니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동의했어. 네가 이 일에 찬성을 한다면 한 달 후에도 넌 나와 함께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난 너와의 이런 관계 끝낼거야." "믿을 수 없어요. 도대체..그런 말도 안되는 제안을 누가....선배!!!" "그렇게 따지듯이 말하지마. 내가 너와 사귀는 전제 조건이 뭐였는지 벌써 잊어 버렸어? 뭐든지 내 뜻대로 하기로 했던 거 아니었어?" "뭐든지 선배 뜻대로라는 게 조건이었죠. 하지만...이해 할 수 없어요. 전혀 그런 의사는 한번도 비친 적이 없었잖아요. 한번도 다른 사람과 비교한 적도 없었으면서.." "너와 일일이 상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싫다는 내게 매달려 이런 관계를 유지해 나가자고 한 건 너였어. 적어도 내게 이정도의 권리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면...이런 나에게 질리기라도 한거야?" 차라리 그가 나를 질타하며 그런 짓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소리쳐 주길 바랐다. 하지만 현서가 그런 일을 할 리가 만무하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니까. 그 약점을 쥐고 있는 한 그는 내 뜻대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서야.. 그것은 반대로 내게도 약점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니? "가끔씩은 너 이외의 사람과 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솔직히 우리 꽤 오랫동안 사귀었잖아? 슬슬 권태기가 올지도 모르니까 한 달 동안만 바꾸기로 한 거야." "아뇨. 전혀 재미없어요. 선배가 아니면...제가 남자를 안을 일은 없을 겁니다." "하! 멀쩡한 얼굴로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혹시 또 모르지, 나 이외에도 속궁합이 더 잘맞는 인간이 있을지."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선배." "어쨌든 결정된 일이야. 번복할 수 없으니까. 나와 계속 사귀고 싶다면 내 뜻에 따르도록 해." [철컹] 철제 의자가 뒤로 밀려나면서 의자는 마치 자물쇠가 잠기는 듯한 묘한 소리를 냈다. 나는 현서를 남겨둔 채 그 방을 나왔다.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화가 난 표정일까...아니면 입술을 깨물고 있을까...마음속으로 나를 향한 저주의 말들을 퍼붓고 있을까....나와 헤어질까를 생각하고 있을까.... 현서에게는 이런 말 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다. 차라리 그가 이런 나에게 실망을 해서 차버리기라도 한다면 이런 말도 안되는 계약 이 성립될 리도 없건만. . [건빵]기막힌 제안-5 다음날 현서는 초췌한 얼굴로 내방으로 찾아왔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결심은 했어?" 거절해 현서야..그런 더러운 일은 못하겠다고 냉정하게 거절해. "하나만 물어볼게요. 파트너 교환이란 건 내가 다른 사람을 안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니면...." 현서는 떨리는 표정을 감추려는 듯 내게서 얼굴을 돌렸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너만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란 것쯤은 알잖아. 말 그대로야. 너와 나 둘 다야." "그렇다면 이 제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선배..." 입술을 피가 나올 정도로 꽉 깨문 채 양 주먹을 바스라져라 쥐고 있는 녀석의 행동에 나도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한 달만이야....한달...그리 길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선배!! 한 달이나 다른 사람에게 안길 겁니까? 왜.........나로선 부족한가요? " "그런 게 아냐. ....네가...너로선 부족하기 때문이 아냐." 서지환과 했던 내기 조건임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끝까지 차올라 왔지만 할 수 없었다. 그런 얘길 했다간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요즘 파트너 교환하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 네가 더 우스워" 현서는 자신의 머리를 힘껏 흔들었다. 조금 길게 기른 갈색 머리가 흔들린다. "싫습니다, 선배! 그건 정말 싫어요. 다른 건 뭐든 할테니까 제발, 앞으로 제가 더 잘 할게요. 그러니까..." "이미 끝난 일이야." 뭐랄까..나는 이미 이성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현서가 어디까지 거절할 수 있을까. 날 정말 사랑한다면 그는 끝까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지? 그 말은 현서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나? 그의 마음을 시험하는 듯한 묘한 쾌감마저 들었다. 현서는 입가로 흘러내리는 피를 옷소매로 거칠게 닦으며 모질게 내뱉었다. "알았습니다. 선배가 그렇게 결심했다면 난 따르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한 달 후에는...한달 후에는 반드시 제게로 돌아와야 합니다. " "그래 반드시 네게로 돌아올 거야. 하지만 너야말로 내게 돌아올 수 있을까?" 오히려 추궁하듯 건넨 내 질문에 현서는 그제서야 희미하게 웃었다. "내게는...선배밖에 없으니까요. 설령 죽는다해도 선배뿐이니까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이 녀석은 그 말을 하며 나를 향해 슬프게 웃어주었다. 제 4 화 서지환의 연인 묘했다. 현서가 아닌 다른 사람과 밤을 지낸다는 것은...........기분이 말할 수 없이 묘했다. 나는 기숙사를 나왔다. 어차피 그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서는 기숙사를 나와야했다. 서지환은 내가 자신의 빌라에서 함께 지내기를 요구했다. 그리고..또 다른 동거인과 함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위층에서는 서지환과 내가 동거를 했고 아래층에서는 현서와 서지환의 연인이 함께 있었다. 서지환의 연인은 어제 이 곳에 와서 처음 보았다. 주민우란 이름의 그는 투명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창백해 보일 만큼 투명하고 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코를 가진 소녀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웠다. 170이 될까 말까한 키에 날씬한 몸매와 찰랑이는 검은머리를 가진 미인이었는데, 이런 미인을 두고 바람을 피려는 서지환이 이상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렇듯 순진해 보이는 민우가 어떻게 파트너 교환에 찬성을 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그런 질문은 사전에 하지 않기로 서지환과 약속을 했기에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러나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내게 민우는 꽤나 싹싹하게 굴었다. 처음 보는 내게 집 구조를 소개해주며 앞으로 잘 지내자고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내게 괜시리 적의를 가지고 불편하게 구는 것보다야 편하기에 나도 차츰 웃으며 그를 대하게 되었다. 그 정도로 민우는 미워할 수 없는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욱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어서 내려오세요, 지금 식사 준비가 다되어서 부르러 갈려는 참이었는데." 아침을 먹기 위해 내려가니 민우는 웃음 띤 얼굴로 나와 자신의 연인인 서지환을 맞았다. 현서는 벌써 내려와서 식탁에 앉아 있었다. 현서의 옆에 나란히 앉는 민우를 보는 순간 가슴 저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불쾌감과 같은 이 싫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미쳤음이 틀림없었다. 같은 집에 기거하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해야 하는 이런 상황을 연출해낸 듯한 이해할 수 없는 그들 두사람의 뻔뻔함에는 욕설을 퍼부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간단한 아침 식사였다. 토스트와 우유...... 잼을 듬뿍 바른 메마른 빵을 베어 물었지만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물끄러미 현서를 바라보았다. 현서도 잠시 내 얼굴을 보더니 얼굴을 외면한다. 그래 내가 무슨 얼굴로 너를 볼 수 있겠어. 다만 이 지옥같은 시간이 어서 흘러가길 바랄 뿐... "민우아, 여기 우유 좀 더 줄래?" "응~" 민우는 뭐가 즐거운지 내내 생글거리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난 기가 막혀 빵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이다. 내 시선은 그들을 향한 증오를 거두고 다시 현서를 바라보았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는지 현서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현서야... 내 눈길에 목이 마르기라도 했는지 현서는 다급히 유리컵에 든 우유를 마셨다. 순간 고개를 젖힌 현서의 목덜미에 난 키스마크를 발견했고 내 몸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끼익-> "실례..." 빌어먹을- 참을 수 없을만큼 욱하는 마음에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마치 몸 속의 피가 온통 머리끝으로 밀려올라 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하룻밤만에 벌써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날 사랑한다면서..현서는 민우를 안았던 것이다. 배신감에 눈물이 배어 나온다. 어떻게 감히 내게 이럴 수 가 있단 말야... 어떻게 감히 네가....... 감히...? "하...하핫!!! 하핫!!!" 내게 '감히' 라는 말을 쓸 자격이나 있었던가? 아무 것도 모르는 그에게 몸을 팔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를 했으면서 내가 질투를 할 자격이나 있을까? "빌어먹을...빌어먹을...." 침대를 흠씬 패며 나는 욕을 뱉었다. 하얀 시트는 내가 내지르는 주먹질에 힘없이 패었다가 다시 솟아올랐지만 나는 두들기는 그 분노의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왜 이렇게 화가 나셨나?" 언제 들어왔는지 서지환이 따라 들어와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았다. "이것 봐, 세영군. 겨우 키스 마크 하나에 이렇게 미쳐 날뛰다니.. 꼴불견이야 알아?" "비열한 속임수로 날 이런 말도 안되는 게임에 끌어들인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서지환은 처음으로 안경을 쓰지 않은 맨 얼굴인 채로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본 그의 눈은 마치 깊은 호수처럼 맑았다. 비열하고 더러운 인간이 이렇게 맑은 눈을 가질 수 있다니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세영군, 아니 좀 더 가까워지 위해서는 세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겠지?" "누가..언제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도 좋다고 했다는 거야?"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이렇게 격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참을 수 없을 만큼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에 지금 이 순간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서지환은 그런 내 당황한 표정을 다른 뜻으로 해석했는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얼굴을 찌루린다. *건빵입니다~~ 벌써 새벽이로군요. 새벽 3시~~~ 좋은 새벽 되세요~ [건빵]기막힌 제안-6 "이름따위 아무려면 어때.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집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절대로 현서와 키스하지 말라는 거야. 그와 키스하거나 신체적 접촉이 있을 때는....특히 그 장면을 민우가 보게 될 경우에는 기한을 일주일 더 늘릴테니까 말야. 응?" "하? 웃기시는군. 그런 조건은 있지도 않았잖아. 왜 당신 맘대로 갖다 붙이는 거야?" "당연한 거 아냐? 네가 현서와도 잠을 자고 나와도 잘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계약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거잖아. " "......키스는 할거야." 오기가 생겼다. 네가 뭔데, 비열한 방법을 써서 이런 말도 안되는 게임에 끌어들였으면서 이제는 그와 나 사이를 가로막으려드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난 안된다고 분명히 얘기했어." 상냥해 보이던 얼굴이 갑자기 무서울 정도로 얼어붙으며 내게 다가왔다. 처음으로 사람이 무섭다는 걸 느꼈고 오금이 저린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 호수처럼 가라앉을 듯 깊고 깊은 눈... 그는 난폭하게 나를 침대에 밀어붙이며 입술을 댄다. 씹어먹듯이 거친 그의 키스에 화가 나서 그를 발로 걷어찼다.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입맞춤. 애정이라곤 전혀 깃들지 않은 분노로 뭉친 이런 키스는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비릿한 철분 냄새를 느끼며 나는 치솟아 오르는 눈물을 참았다. "비켜!! 이 변태새끼... " "한 달만이잖아. 한 달만 우리 서로 협정하자. 네가 현서와 키스하지 않겠다면 나도 네 몸에 손 안 댈게. " "..........?" 거친 키스에 이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그의 제안. 어째서? 이런 말도 안되는 제안을 그가 먼저 해놓고는 지금에 와서 내게는 손가락 하나 안대겠다니..... "거짓말이겠지?" 확인하듯이 묻는 내 말에 그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방금 맞은 배를 아픈 듯 움켜쥐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야야.. 너무 세게 쳤어. 그리고...거짓말 아니니까 믿어도 좋아. 그럼 나와 약속할 수 있겠지?" "그럼 현서는...현서도 민우씨와 같이 안 자는 거죠?"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지. 민우 마음이니까. " "그런 대답이 어딨어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내가 너와 관계를 가지지 않겠다는 게 내 마음이듯이 현서와의 일은 민우 녀석 마음이야. 난 그 녀석 뜻대로 하라고 했어."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었지만 난 다소 안심이 되었다. 서지환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거짓말 같은 걸 할 타입으로는 안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서지환이 내게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현서에게 말해준다면 현서가 민우를 안을 리가 없었기에 후자의 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지금 방금 한 말은 너만 알고 있어야 해. 만일 네가 이 사실을 현서나 민우에게 말한다면 난 그 즉시 너를 안을 테니까 말야. 강제로라도........ 세영아 내 말 이해할 수 있겠지?" 그는 친근한 듯 내 이름을 불러대며 내 생각을 눈치 채기라도 했는지 차갑게 말을 뱉었다. "............." 현서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나흘이 지났다. 현서는 생각보다 밝은 얼굴이었기에 나는 점점 절망과 분노가 쌓여 가는 기분이었다. 지금처럼 뒤뜰에 나와서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티타임을 가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민우를 위해 의자를 뒤로 빼주는 모습을 보며 내 분노는 극에 달했다. "고마워 현서씨~ " 민우는 현서의 행동에 감사의 인사를 했고 현서는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뜨거운 차를 마셨다. 목구멍을 태울 듯한 그 뜨거움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뜨겁잖아....." 눈물방울이 눈꼬리에 맺힐 정도로 뜨거웠다. 화끈거리는 속을 달래며 고개를 드니 서지환이 찬물을 들고 서 있었다. 확실히 체인지 파트너가 맞긴 한가 보군.... 나를 챙기는 게 현서 녀석이 아니라 이 밉살맞은 서지환인걸 보니... 나는 지환이 건넨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잘 마셨어요." "천만에~ 뜨거운 차를 그렇게 단번에 마시는 사람은 처음 봐서 말야." "괜찮아요?" 민우가 어느새 다가와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굉장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자 나도 계속 무시할 수 없어 어쩔 수없이 입을 열었다. "네. 그냥 너무 급하게 마셔서 사래 든 것뿐이니까..." 내게 다가오지 않는 현서가 원망스러워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럼 오늘 오후에는 백화점 쇼핑가면 어떨까요? 나 사고 싶은 것들도 좀 있어서~ " 민우의 제안에 나는 마지 못해 그러자고 했고 우리 네사람은 서지환의 차를 타고 나섰다. "민우야 이제 그만 말 놓고 지내도록 하자. 서로 불편하잖아." 서지환의 제안에 민우는 현서와 내 눈치를 보았다. "그래도 될까요?" 현서는 가만히 있었고 반갑지 않은 제안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어. 게다가 현서는 우리들보다 4살이나 어리니까 말야." 세일기간이었던지 백화점은 사람들로 붐볐다.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시피 하며 쇼핑을 해야했다. "우와~ 사람들 무지 많다." "힘들지 않아?" 민우의 팔을 잡아 주며 현서가 묻자 민우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힘들지 않아. 오랜만이라 재밌어. 현서는?" "별로...... " 민우의 질문에 무뚝뚝하게 대답한 현서는 잠시 멍하니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 어디 가서 시원한 거라도 마시자. 여기 좀 덥다." "그래" 라운지 커피숍에 들어가서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나서 나는 눈짓으로 현서를 불렀다. 예전에 우리끼리 사용하던 암호로 화장실에서 보자는 사인을 보냈고 현서는 가만히 눈을 내려 떴다. "저어..실례 좀.." "어? 세영이 화장실 갈려는거야? 나도 가고 싶은데...." -이런!! 민우가 제동을 걸고 넘어질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아니...그럼 민우 너 먼저 갔다 와." "우...음..그럼 나도 좀 있다 갈래." 민우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서도 다시 주저앉아 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오렌지 주스를 마셔야 했다. 잠시 후 나는 몰래 일어서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현서가 따라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현서는 금방 오질 않았다. "뭐 하느라고 늦는 거야?" 나는 초조한 마음에 시계를 힐끔거렸다. 몇 분이 흘렀을까.....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입구 쪽에서 현서의 얼굴이 나타났다. 조금 흥분한 듯한 그의 얼굴표정을 보며 나도 묘하게 떨렸다. 현서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껴안고 화장실칸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의 뜨거운 혀가 내 혀를 감아왔다. 다급하게 온 입 속을 헤매고 다니던 혀는 뜨거운 타액을 삼키고 나서야 조금 차분해지며 떨어졌다. "선배....괜찮아요?" "으응......하아.....넌?" 그는 다급하게 내 목이며 가슴을 살폈다. "정말...아무 일 없었던 거예요?" "킥킥...그래. 넌...현서야 넌?" 그의 혀가 내 가슴의 돌기를 혀로 간질이고 있었다. "난........" <똑똑> 노크 소리에 우리 두사람은 흠칫하며 행동을 멈추었다. "...........나와" 낮지만 힘있는 그 무서운 목소리에 나는 털썩 변기통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선배?" "쉿......어서 옷 입고 나가자." 현서는 입술을 깨물며 내 옷을 입혀주고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해주었다. *다시 건빵입니다. 잘려다가 글을 좀 더 올리려구요~~~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감동했습니다~~~~ [건빵]기막힌 제안-7 <찰캉> 체인을 열고 나가니 서지환이 무서운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사람이......같은 화장실에 들어가야 할 이유라도 있어?" "..............." 나는 대답대신 붉게 부푼 입술을 찬 물로 씻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서지환씨....선배는..." "강현서 넌 입 닫고 있어. 윤세영 난 분명히 네게 경고했어, 사람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 들어?" <철썩!!> 곧이어 사정없이 날아오는 그의 매서운 손바닥에 내 얼굴은 휙 바람 소리를 귓가에 남기며 돌아갔다. "무슨 짓입니까?" 현서는 화가 나서 소리를 치며 나를 감싸 안았다. "...............아니... 네 그 썩어빠진 말따위 내 정상적인 귀는 해석을 못해.. 알아들었어? 개새끼야!!!" 내 싸늘한 대답에 서지환은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현서 역시 사나운 눈길로 서지환을 노려보았다. "도대체...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선배!!! 그냥 이대로 끝내고 돌아가요." "그럴 순 없지. 안그래? 윤세영." 서지환은 나를 비웃는 듯한 어투로 말을 했고 나 또한 여기서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현서와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 따위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내 인생에 좋은 일이란 건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로 인해서 현서가 피해를 당하는 것은 싫었다. "그래. 아직 유효해. 나도 이대로 끝낸다는 건 섭섭해서 말야." "세영 선배!!!" 현서는 나를 다급하게 불렀지만 나는 현서의 말을 무시하고 서지환에게로 걸어갔다. 서지환은 강한 힘으로 나를 끌어 안았고 곧 그의 차가운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쳐왔다. 아팠다. 그는 마치 굶주린 사람처럼 내 입술을 탐했다. 마치 아이가 어미젖을 탐하듯...끊임없이 내 입술을 핥아왔다. 차가운 입술과 는 달리 혀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나는 그와 키스를 하면서 데이지 않을까 잠시 고민을 했다. 치아를 핥아오며 입천장을 쓸고는 혀를 목구멍 깊숙이까지 밀어넣는다. 숨이 가빠와 입을 더 크게 벌려 공기를 마시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쓰러질 것 같은 내 몸을 지탱해주는 것은 오로지 그의 강한 팔 힘뿐이었다. 흘깃 바라본 현서는 울 것 같은 묘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현서가 이런 나를 지켜본다는 것은 괴로웠다. 왜.... 왜 나가지 않는거야? 어서...나가.....나가...... 그러나 나의 소망과는 달리 그는 나가지 않고 주먹을 쥔 채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환의 귀에 작게 속삭여 주었다. "......이 정도면 일주일 더 연장할 필요는 없겠지...비열한 새끼......" 입술을 뗀 그의 표정은 조금 나른해 보였다. "글쎄...." 나는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찬물로 얼굴을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제5화 엘리베이터 우리가 돌아왔을 때는 민우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빌딩 숲밖에 없는데 뭘 저리도 열심히 쳐다보고 있는 걸까... 의자를 밀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 그는 계속 창 밖만 주시하고 있었다. [드륵-] "어! 왔어?" 그제서야 민우는 그 해사한 얼굴을 돌리고는 말을 건넸다. "으응..아이스크림은 다 먹었어?" "응..." 20대 사내들끼리 건네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